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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의 발생배경

작성자
ko******
작성일
2023-07-12 12:20
조회
275
안락사의 발생배경

의학의 발달과 초고령화 사회

의료기술의 발달, 물질적 삶의 풍요, 사회 복지의 질이 높아진 사회에서 인간의 생존 수명은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한 인구학적 연구에 따르면 1910년에는 65세 이상까지 생존했던 이들이 13%였으나 2010년에는 87%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⑴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의 수명이 평균 60% 정도 늘었다. 수명연장은 현대인들이 이전의 사람들이 겪던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의이든 타의이든 인위적인 의료적 생존 연장수단에 의존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이에 더하여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간격은 사회를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변모시키는 한편 노년의 삶의 질이 생명만 연장되는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각종 질병과 장애에 시달리는 긴 죽음을 맞이하고 있게 된 것이다. ⑵ 즉, 수명이 길어지면서 죽어가는 과정 역시 길어진 것이다.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는 시기를 영유아에서 노년으로 이동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1850년에서 1950년 사이, 공공 보건 개혁으로 결핵, 홍역, 폐렴, 이질 등 고통스럽고 전염되는 질병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사망률이 급격하게 감소한 반면, 암 등 만성적인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이 증가했다. ⑶ 암 환자는 급성 질병 환자보다 훨씬 오랫동안 병을 견뎌내야 했고, 환자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마취제의 양을 아무리 늘려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것입니다. 물론 2020년 2021년엔 코로나라는 신종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현대의 의학기술은 치료제와 백신을 빠르게 개발해서 이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유아 사망률 또한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들로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가 영유아기에서 노년기로 점차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⑷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의학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디프테리아와 매독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었고, 외과 수술은 점점 더 안전하고 성공적이 되어갔다. 특히 항생제는 의료 서비스 개선에 큰 역할을 하면서, 폐렴은 더 이상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게 되었으며, 노인들은 폐렴에 의한 죽음에서 거의 벗어나게 되었다.
20세기 전에는 결핵이나 독감으로 사망했을 수 있지만, 20세기 이후의 사람들은 암이나 발작, 심장질환이나 당뇨로 서서히 죽어가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현대의학의 혁신으로 꼽히는 인공호흡기와 신장투석 장치는 죽어가는 환자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도록 해주게 되었다. 1975년 미국 통신 연합은 스케인의 독재자인 프랑코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그를 살리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82세의 프랑코에게는 적어도 네 개의 분리된 기계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그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것은 그의 맥박이 희미해지거나 느려질 때, 심장 박동이 정상 속도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심장에 충격을 주는 장치였다. 또한 혈액이 몸 전체를 잘 순환하도록 하는 기구와 혈액을 정화시키는 기구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네 개의 기계 장치 외에도 그의 호흡을 돕는 튜브와 복수를 빼는 관, 소화기관에 위액의 압력을 경감시켜 주는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⑸ 이러한 죽음은 단지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공적인 수단의 도움으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의 시간, 장소, 방식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현대 의학에 의한 수명 연장과 발맞춰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초고령화 사회가 환자의 권리에 관한 법적 개념이 발전하게 되는 배경이 된 것입니다.


⑴ 박충구, “삶의 마지막 단계-좋은 죽음에 관한 기독교 생명윤리하적 연구-독일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현상과인식, 2015.9, 202면 참조.
⑵ 박충구, 전게논문, 202면 참조.
⑶ 이안 다우비긴, 신윤경 역, 안락사의 역사, 섬돌, 2007, 117면 참조.
⑷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117면.
⑸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196-197면.


환자의 권리에 관한 법적 개념의 발전

의학의 발달은 죽음을 운명의 문제에서 인간의 개인적 결정의 문제로 전환시키면서 죽음에 관한 논의의 중심을 현실적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사회적, 법학적 관점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1960-1970년대에 시민권·여성의 권리·소비자운동, 그리고 의료분야에서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와 같은 법적·생명윤리학적 원리들이 부각되면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⑹ 이러한 주장과 논리들이 1970-80년대에 생명윤리학 분야에서 심층적으로 논의되면서 환자가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들이 확산되게 되었다. 규범이론으로서의 생명윤리학의 표준이론은 자율성(autonomy), 선행(beneficence), 정의(justice)라는 주요원리로 구성됬는데요 ⑺ 이로써 생명의료윤리에서의 세 가지 윤리원칙, 곧 자율성존중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은 일반적인 의료윤리의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특히 의료윤리학에서는 “악행금지의 원칙(principle of nonmaleficence)”을 추가하여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⑻ 이를 토대로 환자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키기 위해 환자의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도 이러한 원칙에 바탕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1980년대에 ‘죽을 권리 운동(right to die movement)’ 이 전개되었는데, ‘죽을 권리 운동’은 사전지시서와 의료처치의 거부에서 더 나아가 죽음의 적극적인 촉진으로 가는 죽음의 권리를 말한다. ⑼ 이러한 권리를 앞서 주장한 사람은 말기의 암으로 고통 받고 있던 아내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도록 돕고 난 후, 의사조력사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헴록협회(Hemlock Society)를 설립한 Dereck Humphry였다. 1900년대 초반 이후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지만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에 관하여서는 헌법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었는데, 연방대법원은 개인의 자유에 인지적인 능력이 없는 생명을 지속시키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1976년 카렌 앤 퀸란사건에서 뉴저지주 대법원은 헌법상의 프라이버시권은 치료거부권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였는데, 이 사건의 판결 결과는 안락사 관련 사건의 기준이 되었다. ⑽ 또한 1990년 크루젠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실질적 적법절차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4조의 자유이익(protected liberty interest) ⑾ 의 범위에 환자 스스로의 생명연장치료거부권이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⑿⒀ 이를 계기로 1977년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이 최초로 제정되었다. ⒁ 퀸란사건과 크루젠사건을 계기로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권리가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게 되면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환자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단절하거나 사망을 촉진하는 적극적 안락사 또는 자살조력을 받을 권리도 헌법상 권리에 해당되는가 하는 점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소위 보라매병원사건,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 등이 죽음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환자의 법적 권리가 이렇게 의학의 발전을 토대로 전개되었는데요, 다음시간에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변화가 안락사의 배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⑹ 한상수, 전게논문, 165면 참조.
⑺ 김영기, “기술시대의 생명윤리 - 생명윤리학의 방법론과 뇌사 및 장기이식 문제를 중심으로 -”, 철학연구 제56집, 대한철학회, 1996, 6, 16면 참조.
⑻ 이상용, “치료중단과 안락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2001, 34면.
⑼ 이상용, 전게논문, 2001, 96면.
⑽ 첫째, 뉴저지 주 대법원은 퀸란이 자신의 신체치료 여부를 정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헌법상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둘째, 법원은 그녀의 아버지가 보호자로서 퀸란을 대신해 이 권리를 주장하기에 적절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셋째, 법원은 의사·사회 운동가·변호사·신학자로 구성된 다원적인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사전에 문제해결을 시도해보라고 권고했다. Quinlan, 70 N.J. 10(1976).
⑾ “A right that the Due Process Clauses of the State and federal constitutions confer on an individual.” 자유이익은 실체적이익이 아닌 절차적 이익으로서 각 주와 연방헌법을 통해 개인에게 부여되는 권리로 해석할 수 있다.
⑿ Cruzen v. Director, Missouri Department of Health, 497 U.S. 261, (1990).
⒀ 비록 이 사건에서 생명유지 장치에서 분리되기를 바란다는 “명확하고 확실한”증거가 불충분하고, 혼수상태인 크루젠이 법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양튜브를 제거해 달라는 크루젠 부모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쉴라 재서너프, “법정에 선 과학”, 동아시아, 2011, 263면)
⒁ 1984년에는 플로리다주의 ‘생명소생법(Life Prolinging Procedures Act)’이 제정되었고, 1976년 이후부터 1985년까지 31개 주에서 다양한 형태의 입법이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주는 법률로 환자 자신의 의사표시를 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 그를 대신하여 신뢰받는 사람을 “대리인(attorney in fact)”으로 인정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변화

지난 영상에서 환자의 법적 권리가 의학의 발전을 토대로 전개됬음을 알려드렸는데요, 오늘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 변화가 안락사의 배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자살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가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죽음에 관대한 태도는 그 당시 사회의 의료 행위 시스템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 당시 의사들은 대부분이 노예였기 때문에 의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신분에 가까웠고, 죽음을 요청하는 이들의 요구를 거역할 수 없었다. 고대 사회의 의사들은 대부분 불치병이나 난치병 환자를 돌보기를 꺼려했고 환자들은 안락사를 택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⒂ 이런 이유로 고대 사회에서는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간단하고 흔하게 행해졌습니다.
중세 초기 기독교의 영향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할 뿐 아니라 돌봐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덕의식은 빈곤층과 고아, 병자들에 대한 동정심을 중시하는 새로운 정신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서양 최초의 종합 병원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중세의 종합 병원은 종교 기관의 형태로 설립되었는데, 이러한 변화와 함께 의사들은 임종 의식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위치를 굳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준비하고 돕기 위해 의사와 사제와 가족들이 환자의 임종 순간을 함께하는 의식이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의사들은 이 의식에서 환자가 당시의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에게 육체적인 편안함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⒃ ‘훌륭한 죽음’ 이란?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해 엄숙하고 숙연한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가 새로운 다음 세상을 위한 영혼의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의사들 역시 이러한 관행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당시 의료자로서의 그들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기독교인의 ‘훌륭한 죽음’을 위한 의식에서 자신들이 차지하는 주변인적인 역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종교나 신념에 관계없이, 임종 의식에서 필요한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⒄
19세기 의사들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적극적인 치료노력 보다는 ‘해가 되지 않게 한다’는 모토가 지배적이 었다. 19세기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19세기의 의사들은 병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죽음의 영역에는 여전히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격을 갖춘 의사일지라도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편이나 마취약으로 고통을 완화시키는 일뿐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병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예방법을 많이 연구했고,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 기술도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죽음의 위험에 처해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의학은 여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진보에도 불구하고 의술은 이전 시대와 마친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문제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들어냈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에게 의사의 존재는 환자를 위해 평안함을 주고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것이었다. 환자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는 친구의 역할이었고, 환자의 방이 환기가 잘 되는지, 빛이나 열이 적당한지, 너무 시끄럽지는 않은지 등을 살피며 환자가 최대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쓰는 존재였다.
빅토리아 시대 의사들은 죽음의 병에 걸린 환자들의 고통을 조절하는 것이 큰 가치를 지닌 일이었고. ⒅ 19세기 의사들에게는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현대적 의학 기계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윤리적 딜레마는 현대 의사들이 겪는 딜레마와는 다른 것이었다. 죽어가고 있거나 영구적인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환자가 인공호흡기와 영양 공급 기계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나가는 오늘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기적적인 장면이 없었습니다. ⒆
생명연장기계의 출현은 의사의 지위를 높였다.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지위가 격상된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환자 역시 죽음에의 요구보다는 살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 이때부터 의료인은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거나 생명을 연장하며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 임종장소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특수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의사들은 환자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느끼기 까지 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인공호흡기와 같은 최신의 의학기술들을 써야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죽음은 의학의 실패이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죽음이 의료화 되었다. ⒇ 그러나 생명 연장은 또 다른 윤리적 딜레마도 가져왔다. 살리려는 의사와 고통없이 죽고 싶은 환자와의 관계가 생긴 것이다. 의사들은 죽음에 대한 요청에 대해 남용과 사형집행인이라는 불안 속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죽음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태도에서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항하는 지위가 이러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환자의 복지를 배려하는 <후견적 보호와 피보호 관계로부터>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선택하는 소비자>라는 사적인 계약관계로의 변화로 바뀌었는데, 이는 금지와 제한의 논거에 가까웠던 환자의 복지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권의 논거>로 기울게 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즉, 생명권 보호나 국가의 보호의무는 국가의 의무가 중심이 되지만, 개인의 결정과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사적인 계약관계로의 개념은 환자의 이익 또는 프라이버시권의 논거가 더 주요한 것이 되는데 일조한 것이다.(21)
이렇게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변화는 환자의 권리와 의사의 의무, 그리고 삶의 마지막에서의 죽을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안락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⒂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27면.
⒃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41-42면.
⒄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43면.
⒅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84-85면.
⒆ 이안 다우비긴, 전게서, 87면.
⒇ 윤영호, “존엄사”, 사회적 합의와 제도화: 법제도적 정비방안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 2008, 23-24면 참조.
(21) 임미원, “안락사 문제의 법철학적 고찰”, 윤리연구 제71호, 2008.7, 187-188면.


존엄사에 관한 현대철학적 논의 –안락사를 지지하는 근거

사회계약론으로 잘 알려진 존 롤스는 모든 사람이 가지는 자유로운 동등한 권리에 삶과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공정한 사회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결정이 공공의 이익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러한 권리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한 개인의 죽음이 공공의 이익에 위배되는가?를 따져봐야 하겠네요.

상황윤리학자인 조셉플레처와 레이텔스는 고통과 질병으로 죽기로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보고 안락사를 금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상황에 대한 개인적 판단과 양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고 모든 안락사의 허용을 지지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따져보는 졸 롤스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또한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드워킨은 자신의 생명을 어떻게 종식 시킬지와 같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개인의 윤리적 신념이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드워킨은 인간 생명은 자유를 담지하고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바로 자유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하는데, 생명의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생명을 조익시키는 것은 그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위반하는 것이 되지만, 존엄하게 죽을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는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야기한다고 한다. 다시말해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종식시키는 것이 생명의 소유자에게 더 옳은 일이며, 자유를 담지하고 있는 주체가 가진 ‘생명을 성공으로 이끌 책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여 인간을 ‘자유나 권리를 가진 주체성 있는 생명’을 전제로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존엄사협회 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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