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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삶은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서 끝나는 전체과정을 포괄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인격적 자기결정은 어떻게 삶을 마감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도 포함한다"
-한국존엄사협회
“어떤이에게 있어 생명의 신성성이란 단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서 더 나아가 그의 삶이 어떠한가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하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생명의 신성성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
-로널드 드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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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6년 신년 정기총회 공고 2026년 1월 31일_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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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존엄사협회 2026년 신년 정기총회 공고 아래와 같이 한국존엄사협회 정기총회를 개최합니다. 함께 힘을 모으는 마음으로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석이 어려운 분은 위임장을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임장 제출: 아래 파일 다운로드 후 위임장 작성하여 daisydahye@naver.com 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2026년 1월 31일(토) 오후 3시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69 롯데캐슬골드오피스텔 819호 안건 1. 2026년 사업계획 및 결산 2. 조직도 변경 (임원 임명 및 변경) 3. 유료 회원 전환 및 회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결정 4. 기타 논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026년 1월 2일 한국존엄사협회장 최다혜 | 2026.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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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연말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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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에서 한국존엄사협회는 다시 한 번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깊이 생각합니다. 2025년에도 우리 사회가 생애 말기 환자의 고통과 선택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헌법소원 제기, 국회와 시민사회에서의 논의, 그리고 11월 1일 ‘죽을 권리의 날’ 걷기대회까지— 이 모든 과정은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향한 시민들의 연대와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걸음은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환자와 가족, 의료인, 법조인, 시민 한 분 한 분의 지지와 응원이 우리에게 멈추지 않을 이유를 주었습니다. 그 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존엄사 논의는 죽음을 서두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권리는 언젠가 제도가 되어,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선택의 가능성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다가오는 2026년에도 한국존엄사협회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걸음으로, 사회적 합의의 길을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연말연시 평안과 따뜻함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존엄한 삶과 마무리를 위한 길에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2월 한국존엄사협회 드림 | 2025.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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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일 행사안내] 세계죽을권리의 날 기념 '존엄사 법률 입법 촉구 걷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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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 존엄사 캠페인이 시작됩니다. 참가 신청해주신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직접 참가 못하시는 분들도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일 캠페인을 통해 존엄사 제도화에 한발 더 다가갑시다. | 2025.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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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안락사가 온다 - 네덜란드 안락사법에서 본 특권적 연민과 완결된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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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oklawyer/224122036423 안락사법이 없는 우리나라. 그러나 네덜란드는 2002년에 도입되었다. 네덜란드는 매우 실용적인 나라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의미한 삶을 살면서 고통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가장 먼저 보장된 나라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에 자살방조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자살은 무죄지만, 자살방조는 유죄인 나라이다. 그러나 포스타마 사건, 베른트 하임 사건, 스혼하임 사건, 사보 사건을 거치면서 안락사에 대하여 무죄나 면책을 법원이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관행이 입법으로 이어졌다.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입법이 된 이유로는 네덜란드는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경제적 동기나 돌봄 부족 때문에 생명을 고의로 종결하는 결정을 내릴 우려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대부분 가정의가 있어서 오랫동안 환자를 가정 방문을 통해 정서적 유대가 깊은데 그들이 안락사에 대하여 결정해 주었다. 네덜란드 의료계는 자율이 많다. 네덜란드 검찰은 의료계의 의견을 들어서 안락사 사건에 대하여 기소하지 않았다. 안락사의 문제는 오로지 의료 전문직 내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네덜란드는 실용적인 경향이 강하여 관행을 지하로 숨기지 않고 규제 안에 넣어서 통제하려고 하였다. 안락사도 어차피 필요하고 존재한다면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입장이다. 즉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법은 뚜렷한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대한 실용적 대응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특수한 개념들이 있다. 특권적 연민은 안락사와 같은 생명 단축 행위가 예외적으로 면책될 수 있도록 정당화하는 의사의 윤리적 동기와 재량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네덜란드 안락사의 핵심은 형법상 범죄인 행위가 환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에 기반해 일정 요건하에서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안락사는 오로지 의사의 재량적인 판단에 의할 수 있고, 의사가 아닌 사람은 할 수 없다. 완결된 삶이라는 용어는 중증질환이나 정신질환이 없음에도 개인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생존 자체를 고통으로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완결된 삶이라는 개념은 환자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율성에 윤리적 근거를 두고 있으나 현재 네덜란드에서도 여기까지 존엄사를 확장하고 있지는 않으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다중 노년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고령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다양한 퇴행성 상태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안락사가 하려면 환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어야 하는데, 단일 질환은 아니더라도 여러 질환들이 결합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킬 때 이를 안락사의 고통으로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고령자의 안락사 요청 정당화를 뒷받침하는 의료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완결된 삶의 개념과 더불어 안락사의 확장을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 안락사법이 없지만, 안락사법이 만들어진 나라들은 대부분 그 범위가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미끄러운 경사' 논증이라고 한다. 안락사법이 만들어진 후에 판단능력이 없는 신생아와 아동까지 확대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안락사 논쟁의 중심은 헌법상 기본권인 자기결정권 보장에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기본권 보장의 개념보다는 생명을 종결한 의사가 기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요청에 의한 생명종결과 자살 조력이 의사에게 면책이 되도록 관행이 만들어졌고, 이를 사회적 합의로 안락사법을 만든 것이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안락사 허용여부의 결정 권한은 의사에게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사전연명의료서의 기재 내용도 의사가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에 입법이 된 후 그 이후에 개정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완결된 삶이나 다중 노년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안락사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입법운동을 하였으나 실패했다. 자기 결정권이나 사생활 보호등의 기본권을 통해서 의미 없는 삶을 종결하려고 해도 의사들은 반대했다. 지역 안락사 심의의원회가 있는데 모두 5인이고 한 명은 반드시 변호사이다. 나도 나중에 그런 위원회가 있으면 참여해 보고 싶다. 네덜란드는 2022년에 안락사 신고 건수가 8,720건이었다. 남녀의 차이는 거의 없이 50% 정도다. 질환별로 보면 불치암 환자가 58%, 신경계 질환 7%, 심혈관 4%, 폐질환 3% 정도다. 처음 안락사법이 제정되었을 때에는 안락사하는 사람의 96%가 불치 암이었으나 다른 질환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래도 대부분은 말기암환자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안락사도 늘어나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70대가 33%, 80대가 26%, 60대가 19%였다. 안락사의 이용자는 대부분 노인들이다. 네덜란드는 자택 사망이 가장 많았고, 호스피스나 요양원이 그 다음인데 병원은 거의 없다. 네덜란드는 가정의 제도가 있고 가정 방문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거 같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고 있는데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는 안락사법을 24년간 운용해온 나라이다. 그 나라의 안락사법 운용 실태를 아는 것도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우리나라도 곧 안락사법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한다. 노인이 늘어나고,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없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안락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남용이나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제도로 만들어서 감시해야 한다. 네덜란드도 안락사 심의위원회와 검찰에 안락사를 보고하고, 이를 확인한 후에 면책하는 절차를 도입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입법하는 네덜란드처럼 우리도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입법해야 할 것이다. 2025. 12. 25. 걷는 변호사 조용주 블로그 글 | 2025.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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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할 자유”…92세에 직접 ‘존엄사’ 택한 남자 [월드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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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디그니타스 창립자 루트비히 미넬리, 생의 끝까지 ‘죽을 권리’ 옹호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존엄이다” 스위스 ‘존엄사 단체’ 디그니타스를 창립한 루트비히 미넬리가 92세를 일기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며칠 뒤면 93번째 생일을 맞을 예정이던 그는 자신이 세운 단체 시설에서 조력사망을 택했다. AFP통신은 30일(현지시간) “미넬리는 전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의 자유의지와 자기결정권을 옹호했다”며 “그의 죽음 자체가 철학의 완성이었다”고 보도했다. 언론인에서 인권 변호사로…“마지막 인권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 193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미넬리는 젊은 시절 언론인이었다. 1950년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서 기자로 일하며 사회문제를 다뤘고 이후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다. 그는 1998년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을 슬로건으로 디그니타스를 설립했다. ‘죽음을 돕는 단체’라는 거센 비판 속에서도 그는 “죽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권”이라고 맞섰다. BBC는 “미넬리는 언론인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신한 뒤,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사회에 각인시켰다”고 평가했다. 4000명이 ‘그의 길’을 따라…“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디그니타스는 설립 이후 전 세계 1만 명 이상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2024년까지 약 4,000명이 단체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 이 가운데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각국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 출신 회원들도 포함됐다. 피플지는 “미넬리는 자신이 세운 시설에서 스스로의 신념대로 생을 마감했다”며 “그의 결정은 일관된 철학의 연장선이자 ‘자기결정권의 실천’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2010년 B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지막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 인권은 자신의 생의 끝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이며, 고통 없이 맞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루트비히 미넬리 - 2010년 BBC 인터뷰 ‘죽을 권리’ 확산 속 논쟁은 여전 현재 스위스에서는 당사자가 약물을 직접 복용하는 조력사망이 합법이지만 타인이 투여하는 안락사는 금지됐다. 디그니타스는 이런 법적 틀 안에서 80여 개국 회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AFP통신은 “디그니타스 설립 이후 30년간 전 세계가 점차 조력사망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왔다”고 분석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스페인·오스트리아 등이 이미 법제화를 완료했고 프랑스도 올해 말기 환자 대상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조력사망이 불법이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해졌지만,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 생을 마감하는 행위는 자살방조죄로 처벌된다. “스위스에서 떠날래”…한국인도 택한 존엄한 죽음 2023년 8월 말기 암 환자였던 고(故) 조순복(79) 씨는 스위스 디그니타스에서 의사가 건넨 약물을 직접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디그니타스를 통해 사망한 여덟 번째 한국인 사례였다. 딸 남유하 씨는 어머니를 도와 신청서 접수부터 일정 조율, 현지 이동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엄마의 죽음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선택이 엄마의 마지막 존엄이었다”고 남 씨는 말했다. 남 씨는 “우리나라에서도 합법이었다면 더 평온하게 모실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제는 ‘죽을 권리’도 논의돼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결정”…그가 남긴 질문 루트비히 미넬리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다. 그가 세운 디그니타스는 지금도 매년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두려움보다 선택의 자유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삶은 단지 ‘죽음을 준비한 인물’이 아니라 삶의 끝에서도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려 한 한 인권운동가의 기록으로 남았다. 윤태희 기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596851 | 2025.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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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법률 입법촉구 시민 걷기 대회(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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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존엄사협회(회장 최다혜)와 순례길학교(교장 조용주)가 주체가 되어 여러 단체와 함께 존엄사 입법촉구 걷기 대회를 진행하였다. 11월 1일은 세계 죽을 권리의 날이다. 이 날은 2008년 파리에서 세계죽을권리연맹에서 처음 지정한 날로 존엄사(조력존엄사) 입법과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국제적 기념일이다. 날씨가 흐리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화창한 날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국회의사당 정원을 돌아보았다. 중앙 조각상 둘레에 심겨진 갖가지 색의 국화들이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로 가보니 관계자들이 벌써 도착하여 명찰과 간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거리를 걸을 때 나누어 줄 전단지도 챙긴 후 국회 의사당이 보이는 문 앞에 서서 오늘의 행사를 시작했다. 걷기 코스는 국회 의사당에서 시작해 대한의사협회, 명동성당, 조계사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순차적으로 방문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먼저 국회의사당 앞에서 순례길학교 조용주 교장이 '조력존엄사 입법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그리고 함께 '국회는 조력존엄사법을 신속히 제정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주먹손을 들어올리며 함께 마음을 모았다. 대오를 정리하고 다음 목적지인 대한의사협회 회관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가다가 노들역에서 내렸다.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한강대교를 건너서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회관을 찾아갔다. 회관 앞에서 시위를 하지 못하게 막아서 인도에 대오를 만들었다. 병원에서 연명치료 받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말기 암환자들을 목도하는 사회복지사의 사연을 들으며 존엄한 죽음의 필요성에 대해 여실히 느꼈다. 아파트 숲 사잇길을 걸으며 도시의 가을풍경을 눈에 담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동네 주민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이촌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가다가 명동성당으로 가기 위해 명동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준비한 전단지를 돌리며 조력존엄사법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간도 가졌다. 명동성당 앞에서 다시 대오를 정비했다. 여기서는 말기 암환자였던 어머니를 스위스에 가서 떠나보내고 온 남유하 작가가 사연을 이야기하며 성모송을 암송하였다. 그의 상기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 켠에서 뭉클함이 밀려올려왔다. 명동성당에서 걸어서 조계사로 이동하였다. 조계사앞에서는 자애경을 함께 낭독하며 어떠한 생명체일지라도 모두 행복을 누려야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북촌으로 가는 길을 따라 헌법재판소앞까지 갔다. 여기서는 한국 존엄사협회 최다혜 회장이 조력존엄사법이 필요한 것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걷기 코스의 마지막 장소인 기독교총연합회 회관을 가기 위해 창경궁과 종묘 사잇길을 걸었다. 단풍이 들어 알록달록한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며 잠시 앉아 쉬기도 하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대오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조력존엄사 입법 촉구를 위한 구호를 외쳤다. 두 단체 중심으로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조력존엄사법이 속히 입법이 되기를 바라며 국회의사당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까지 걸어다니며 존엄하게 죽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알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솔직히 조력존엄사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하기 위해 스위스에 죽으러 간다더라는 얘기도 그냥 흘려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순례길학교 여름 방학 세미나 시간에 최다혜 회장이 발표한 강의를 들으면서 고통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말기 암환자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생각외로 많았고 그 일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력존엄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찬반의견이 다양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대지만 들어보면 조력존엄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 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 이후 불교아카데미 세미나에 참석하여 존엄사 관련 세미나를 듣고 또 존엄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조력존엄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존엄하게 살다가 존엄하게 죽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생각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간답지 살지 못하고 생명만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순례길학교 https://cafe.naver.com/walkofunification/920 | 2025.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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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빠 TV 유투브 출연] 인간다운 죽음을 찾아서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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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II1qeRHwvo | 2025.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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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에릭카 프라이지히 지음 (스위스 라이프서클 대표) 박민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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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라이프서클 대표이자 의사인 에릭카 프라이지히가 쓴 글이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과정에서 한국존엄사협회가 감수를 했습니다. 감수의 글입니다. 감수의 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권리를 말하다 이 책은 한 스위스 의사의 개인적인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곧 생애 말기 환자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의료인의 시선과 우리가 마주한 법적·윤리적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단지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책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기록이다. 조력사망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생애 말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게는 구체적이고 절실한 현실이며, 때로는 마지막 남은 인간다운 선택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그 선택이야말로 고통의 시간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생명이란 단지 ‘살아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말기 환자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삶이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나답게 마무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연장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가치인 양, 삶의 마지막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까지 포함한다. 이는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의 핵심이자, 인간 존엄의 본질과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나는 토론회에서 “생애 말기 환자의 마지막 인권”을 이야기했고, “죽을 권리의 날” 행사에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죽음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실현임을 강조해왔다. 또한, 조력사망을 둘러싼 입법 공백과 형법상 자살방조죄의 문제를 지적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동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 그리고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의 환자들은 스위스와 같은 먼 나라로 떠나야만 조력사망이라는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열 시간 넘는 비행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에게 그러한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는 환자의 선택권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단지 법적·제도적 결여가 아닌, 방치되고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도 생애 말기 환자들을 위한 더 많은 선택지를 제도화하고,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단지 몇개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를 단순한 찬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의 실현과 자기결정권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 책이 생애 말기 환자의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담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감수자로서,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염원하는 시민으로서, 이 책의 뜻을 깊이 지지하며 그 길에 함께하겠다. 2025년 7월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 | 2025.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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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아카데미 세미나 후기] 지난 9월 13일 불교아카데미에서 조력존엄사를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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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아카데미 세미나 후기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상과 현실-불교인을 중심으로” 지난 9월 13일, 불교아카데미에서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상과 현실-불교인을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불교계에서 처음으로 조력존엄사를 정식으로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불교 교리와 조력존엄사] 가톨릭계가 일관되게 조력존엄사에 반대해온 것과 달리, 불교계는 보다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세미나에서는 조력존엄사가 단순히 생을 끊는 것이 아니라, 말기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해방시키고 편안히 보내주는 자비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는 불교의 교리와 완전히 배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이 사회 변화에 더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표 내용과 다양한 시각] 세미나에서는 현실적·법적 쟁점도 함께 다뤄졌다. 한국존엄사협회는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이 마주하는 구체적 어려움과 제도적 필요성을 제시했고, 조용주 변호사는 법적 측면에서 조력존엄사가 환자의 선택지로 제도화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불교아카데미 통계 조사에 따르면 불교인의 89%가 조력존엄사 제도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불교계의 인식이 사회적 논의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느낀 점과 기대] 이번 세미나는 조력존엄사 논의에 있어 불교계가 가지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불교의 전통적 교리 속에서 자비와 해탈의 가르침은, 고통에 처한 이들의 마지막 길을 존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불교의 유연한 태도가 한국 사회에 조력존엄사 제도가 성숙하게 정착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 2025.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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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any |
N 안락사와 구별 |"나는 살 만큼 살았다"...👩의사의 엄마가 '단식존엄사' 한 이유 -📚[서평]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영면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단식 존엄사>-김규종 기자님 오마이뉴스 📰🗞 🇹🇼대만의 재활의학과 의사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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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와 구별 |"나는 살 만큼 살았다"...👩의사의 엄마가 '단식존엄사' 한 이유 -📚[서평]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영면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단식 존엄사>-김규종 기자님 오마이뉴스 📰🗞 🇹🇼대만의 재활의학과 의사로 활동한 비류잉(畢柳鶯)의 <단식 존엄사> ㅡ 📚 ▲ <단식 존엄사>,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2025.ⓒ 글항아리 https://naver.me/x5m5A4PS 사진 댓글에 기사 댓글 사진도 댓글에 / 사진포함 링크 터치 ↪️ [서평]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영면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단식 존엄사> ▲ <단식 존엄사>,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2025.ⓒ 글항아리 나이 든 분들에게 가장 두려운 게 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사람 모두 '치매(癡呆)'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요양원에 들어가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언제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치매 환자. 나는 그분들에게 치매 예방을 위한 열 가지 수칙을 열심히 알려주지만, 그것을 숙지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입원했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낙상, 치매, 뇌졸중이 원인이다. 근육 손실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낙상 사고,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오는 뇌졸중과 치매가 노인들을 옭아매는 주범이다. 요즘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기사가 이런 질환을 예방하고 적시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대만의 재활의학과 의사로 활동한 비류잉(畢柳鶯)의 <단식 존엄사>는 한국 사회에서도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연명치료와 자연사를 다룬다. '소뇌실조증' 환자로 판명된 어머니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영면에 드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 <단식 존엄사>다. 이 책에서 나는 처음으로 '단식 존엄사' 개념과 방법을 만났으며, 우리 상황도 깊이 반추하게 되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 삶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죽음을 숙고하고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은 많아도,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사람은 날로 줄어든다. 수많은 가문에서 제사를 없앴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추석과 설 명절에 여행객은 대폭 늘어난다. 생로병사의 순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만, 오늘을 향락하는 풍조는 해마다 강해진다. <단식 존엄사>에는 죽음을 대하는 평온한 자세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태어남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죽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존엄하게 자연사하는 것이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이다. 죽음을 생각함은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은 옷을 바꿔 입는 일이며,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일이다." (14-123쪽) 비류잉은 일본 의사 나카무라 진이치를 인용하면서 죽음을 진지하게 고려하라고 충고한다.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 동안 225회에 걸쳐 나카무라는 '자기의 죽음 생각하기' 모임을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말기 의료, 암 선고, 뇌사, 장기 이식, 연명의료, 존엄사, 안락사, 어떻게 사는 것이 후련한가 등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2012) 지은이인 나카무라는 말한다. "중병에 걸려도 구급차를 부르거나, 입원 치료를 하지 않고 집에서 자연사하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마지막 유산이다." (28-29쪽) 비류잉의 어머니와 아버지 소뇌실조증은 소뇌(小腦)의 신경세포가 퇴화하는 질병으로 보행장애와 어눌한 발음, 삼킴장애인 연하곤란(嚥下困難) 등의 증세를 보인다. 1937년 대만에서 태어난 비류잉 어머니는 4살에 모친을 잃고 17살에 결혼해서 2녀 1남을 낳았다. 평소 연명치료에 반대했던 그녀는 2001년 64세에 소뇌실조증이 발현하여 20년을 투병하다가 마침내 영면한다. 젊은 날부터 요가를 배우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식품과 담을 쌓고, 자연식을 고집한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근검과 베풂, 환경보호를 습관처럼 남겨주었다고 한다. 반면에 중국 본토 출신인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자신만의 삶에 탐닉하여 아내와 자식들에 전연 무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쁘게 말하고, 자신만 늘 옳다고 주장한 비류잉의 아버지. 소뇌실조증 판정 이후에도 어머니는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9년 넘도록 혼자 보살핀 이력도 있다. 하지만 비류잉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갑게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다. 그런 까닭에 58년에 이르는 장구한 결혼 생활이 어머니에게는 참혹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머니는 사후(死後)에 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단식 존엄사 비류잉 어머니는 병원에서 의료사 하는 것보다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판단 아래 2019년에 내년 생일 지난 다음 단식으로 삶을 끝내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누구한테 빚진 것도 없고, 여한이 없어. 지금은 밥 먹고 화장실만 가잖아. 매사 다른 사람한테 민폐만 끼치니까 쓸모없는 인간이 된 거 같아. 살 만큼 살았어. 일찍 가면 틀림없이 기쁠 거야. 여기저기 아플 일도 없고. 다른 사람한테 민폐도 안 끼치고." (119쪽) 받아 놓은 날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자신의 말을 즉시 실행하기 시작한다. 비류잉은 그것에 관한 스무하루의 기록을 남긴다. 어머니의 마지막 섭생을 골자만 살펴보자. "1일부터 10일, 죽과 삶은 채소, 과일, 11일, 세 끼니 모두 기름 한 숟갈과 연근 물 1컵, 17일, 생전 장례식, 21일, 어머니 영면." (141-153쪽) 단식 존엄사는 음식과 수분 섭취를 점진적으로 줄여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음식 투여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면 노쇠한 노인은 열흘에서 2주, 길어도 한 달쯤이면 생과 작별하게 된다고 한다. 나카무라 진이치는 말한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한다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가중하고, 임종 과정만 늘릴 뿐이다. 강제 인공영양법은 의료인의 사명감과 가족의 죄책감에서 비롯한다. 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죽음을 직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115-117쪽) 생전 장례식 대만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특별한 예식이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에게 가족들이 '생전 장례식'을 열어주는 것이다. 비류잉은 사후 장례식은 사자(死者)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보다는 가족이 마음을 모아 떠나는 분에게 생의 마지막 졸업식이자 시상식인 생전 장례식이 훨씬 유의미하다고 역설한다. 그녀의 주장을 들어보자. "생전 장례식은 떠나는 분과 가족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것을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번 생의 가치 확인, 둘째, 후회의 최소화, 셋째, 감사와 사랑의 말 전달, 넷째, 가족의 소통과 결속력 강화 및 유언 전달 가능성." (157쪽) 생전 장례식 자리에 모인 비류잉 어머니 가족들은 세 시간 정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따사로운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는 당신의 수목장 자리가 아버지에게서 멀면 멀수록 좋겠다는 바람을 유언으로 남긴다. 생전 장례식을 포함한 21일의 단식 존엄사를 통해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비류잉은 회고한다. '옮긴이의 글'에서 나는 2022년 2월에 결성된 '한국 존엄사 협회'를 알게 되는 행운과 대면한다. '한국 존엄사 협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취지를 옮긴다. "죽을 권리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사 조력사(助力死)가 제도화되는 데 앞장서고자 설립했다. '세계 죽을 권리 연맹' 회원단체로 말기 환자, 극한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임종기 환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증진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단식 존엄사>,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글항아리, 2025. 김규종 📷 | 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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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주장자 릴레이 |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참고한 설정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②]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님)--신선영 기자님 시사IN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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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주장자 릴레이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참고한 설정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②] -송병기 (의료인류학자님)--신선영 기자님 시사IN 📰🗞 ㅡ 🗞📝댓글 14개 📷 ↘️ 존엄성은 환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죽음은 삶의 총체적 문제로 사유되어야 한다. https://naver.me/FBaLZrfw 📷댓글사진 1장 포함 링크 터치 ↪️ 기사 댓글 📷사진 7장 댓글에 게시!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참고한 설정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②] “몸을 고치려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지친 상태로 병원 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 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 naver.me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참고한 설정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②] 존엄성은 환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죽음은 삶의 총체적 문제로 사유되어야 한다.“몸을 고치려는 치료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힐 만큼 지친 상태로 병원 로비를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 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이제 웬만한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고칠 수 있다던데.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자기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그 지경까지 안 갔을 텐데.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그들이 주고받던 말.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탓이라는 그 말들. 그들의 말은 나의 자책과 다르지 않았다. 내 잘못을 찾는 방법으로 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거지?” 최진영의 소설 〈홈 스위트 홈〉에서 화자인 ‘나’는 40대 일러스트 작업자이다.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충청남도 보령의 작은 빌라로 이사 온 지 몇 해가 흘렀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바람 속에서, 반려인과 함께 평온한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암 진단을 받았다. 여느 암 환자처럼 병원이 이끄는 진단과 치료의 세계 속으로 편입되었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선택했다.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재발했다. 진단과 치료가 반복되고 재발이 거듭되었다. 그의 삶은 점점 건강을 지시하는 각종 수치로 납작해져갔다. 의사는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는 결정해야 했다. 삶의 감각과 서사는 재발 가능성과 치료 가능성이란 여지 앞에서 유예된 채 대기 상태로 머물 뿐이었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타인의 말이다. 그 아픔은 타인과 제도의 언어로 정확히 번역되지 못한 채 내파된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국면을 여는 동인이 되기보다는, 무너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변모한다. 결국 그는 현재를 저당 잡는 이 세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건강, 책임, 확률, 평가의 경고음 같은 언어가 아닌, 삶의 감각과 서사로 충만한 세계로 떠난다. 그는 마음 편히 지낼 집을 지어 살아가기로 하고,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혹자는 이를 ‘존엄한 죽음’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원본보기📷 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의료진과 환자가 들어서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그렇다면 죽음과 존엄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요즘 이 두 단어가 유난히 함께 호출된다. 여기서 존엄이란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죽음 앞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도록 이끄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두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가 간과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환기하는 말이다. 일상에서 존엄은 정치한 원칙이나 개념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장면 속에서 경험되는 감각에 가깝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느껴지고, 말과 태도에서 드러나며, 때로는 흔들리고 훼손되기도 한다. 동시에 존엄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에 대한 실천을 요구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에서는 안락사라는 용어가 ‘존엄사’로 표현되며,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곧장 안락사 합법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돌봄의 실천과 이를 둘러싼 담론은 존엄한 죽음을 지연시키거나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마치 돌봄이 ‘존엄을 위한 자기결정’을 방해하는 요소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 결과 돌봄과 안락사의 대립은 ‘생명의 신성함 대 개인의 선택’이라는 또 다른 갈등 구도로 재구성된다. 동시에 이 논쟁은 존엄을 강조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듯하다. 생명을 돌봐야 한다는 주장과 고통을 덜기 위한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두 존엄을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주목할 점은 안락사 논쟁에서 죽음과 존엄이 함께 호출되는 일이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서구 사회에서도 이 두 단어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사용되어왔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한국 내 안락사 논쟁에서 죽음과 존엄이 어떤 의미로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고령 환자를 굶겨 죽인 의사 197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저명한 의사 우르스 해머를리가 안락사 혐의로 살인죄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시의원 레굴라 페스탈로치가 한 시립병원 내과 책임의사였던 해머를리를 고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정치인은 해머를리가 회복 가능성이 없는 고령 환자들에게 관을 통한 영양 공급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수분만 제공함으로써 죽음을 앞당겼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즉각 살인 혐의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수사의 초점은 특정 환자를 살해했다는 개별 혐의가 아니라, 약 4년에 걸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다수의 고령 환자들을 ‘굶겨 죽였다’는 포괄적 의혹에 맞춰졌다. 한편 해머를리는 뇌졸중 이후 수개월간 혼수상태에 머물며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 영양 공급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 치료가 아니라고 보았고, 따라서 이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사회에 던졌다. ‘의식이 없고 회복 가능성도 없는 환자에게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사건은 곧바로 스위스 전역의 언론 1면을 장식하며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소위 ‘해머를리 사건’은 안락사(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으로, 본인의 요청에 따른 의료적 조력을 통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보다는 연명의료의 중단 및 유보에 관한 논쟁에 가깝다. 다시 말해 당시 스위스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나 연명의료에 대한 용어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죽음과 존엄을 둘러싼 문제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공적 논쟁의 장으로 호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의사의 윤리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 사회가 연명의료 결정, 안락사, 환자의 권리, 임종 돌봄 등의 문제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하나의 분기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의료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의료정책과 시스템 역시 체계화되면서, 치료 성적과 사람들의 의료접근성 역시 매우 높아졌다. 과거라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렀을 상황들이 의료적 개입을 통해 연장되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 인공 영양 공급, 혈액투석 등의 기술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지속적 식물상태’나 ‘되돌릴 수 없는 혼수상태’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새로운 회색 지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기대수명의 연장과 함께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면서, 질병을 ‘완치’하는 의료의 목표 자체도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그 대신 ‘삶의 질’이 의료적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했다. 더욱이 1960년대 서구 사회는 기존 위계질서와 억압적 구조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간존엄성을 강조하는 전방위 변화 속에 있었다. 유럽과 북미 전역에서는 다양한 사회운동(여성·인권·교육·문화·평화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원본보기📷 한 대학병원 병실 복도에서 간병사가 환자를 부축해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포토 해머를리 사건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등장한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기술의 진보와 생명의 신성함이라는 가치, 그리고 거대한 관료제 앞에 놓인 개인의 구체적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쉽게 해소되지 않는 문제의식을 벼리기 위해 ‘존엄(dignity)’이란 단어가 사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즉, 존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존엄이란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누가 어떤 원칙으로 판단할 것인가, 생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죽음과 존엄의 결합은 점차 개인 의사의 윤리적 판단을 넘어 공적 언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70년대 후반 임종자와 환자의 권리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는 존엄한 죽음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1976년 채택된 유럽평의회의 결의안과 권고안에서 강조된 핵심은, 의사가 환자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과 생명의 연장이 의료 행위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결의안이 존엄한 죽음을 선언적 원칙으로 제시하며 기술 중심 치료에 대한 비판과 임종자의 이익 우선을 강조했다면, 뒤이은 권고안은 의료인 교육, 병원 절차의 정비, 윤리위원회 설치, 생명 연장 조치의 기준 마련과 같은 제도적 장치로 이를 구체화했다. 이 공론화 과정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right to death with dignity)’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die in dignity)’와 같은 표현은 안락사를 직접 의미하기보다는 연명의료 결정,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확충, 환자의 정보 접근성과 동의 문제 등을 포괄하는 우산 같은 언어로 기능했다. 다시 말해 이는 무엇이 정당한 의료 행위인지를 가늠하는 규범적 기준선이자 정치적·윤리적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더 주목할 점은 이 공통의 언어를 바탕으로 각국에서 서로 다른 제도적 경로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원본보기📷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주인공 상연은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은중은 그 길에 동행한다. ©넷플릭스 제공 영국에서는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확충(섬세한 말기 돌봄이 존엄한 죽음으로 연결)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고, 프랑스에서는 안락사 합법화 요구와 완화의료 시스템 강화가 긴장 속에서 병존했다. 네덜란드는 탄탄한 1차 의료 체계를 토대로,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응답을 찾아갔다. 스위스의 경우 국가 제도보다는 민간 차원의 대응이 두드러졌는데, 1982년 설립된 단체 ‘엑시트(EXIT)’를 시작으로, 1998년에는 존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이름을 딴 ‘디그니타스(Dignitas)’가 등장했다. 이러한 단체들은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도 재현되었는데, 예컨대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 등장하는 의사조력자살 지원 단체는 디그니타스를 참고한 설정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오리건주가 1997년 최초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했으며, 그 법률명 역시 ‘존엄한 죽음(Death with Dignity Act)’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처럼 ‘존엄’은 개인과 공동체가 오늘날 죽음을 다루는 방식 전체를 다시 사유하도록 요구하며, 새로운 제도와 실천을 촉구하는 언어로 기능해왔다. ‘비생산적인’ 생의 끝자락 한국에서 ‘죽음’과 ‘존엄’이라는 언어가 함께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일까. 그 분기점은 2008년으로 볼 수 있다. 그해 발생한 이른바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둘러싼 쟁점을 가시화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경로가 일상을 뒤흔드는 경험으로 인식되면서, ‘존엄’이라는 언어가 점차 조명받게 되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건이 ‘불평등한 삶의 조건이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은 한국 사회 역시 1970년대 서구 사회가 경험했던 변화와 여러 측면에서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다. 2000년대 초반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출범과 함께 의료접근성이 확대되고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생명을 적극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에 따라 죽음의 장소 또한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속적 식물상태와 같은 삶과 죽음의 회색 지대가 가시화되었고, ‘치료의 무의미함’과 ‘연명치료’ ‘윤리적 의료 결정’,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둘러싼 논의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은 이 같은 변화들을 해석하는 데 강력한 인식 틀을 제공했다. “이미 의식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면 자연적으로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칠 수 있으므로, 환자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판결문에서 인간 존엄성은 내재적인 가치이자 근원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그 자체 외의 어떤 조건에도 근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간 존엄성은 내재적이고 근원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권력(가령 거대한 의료시스템)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는 ‘취약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이렇게 규정된 존엄성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사람들은 존엄의 이러한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죽음을 둘러싼 삶의 문제를 해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 존엄성이 환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 의사결정(자기결정·선택권·자율성 등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은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자기 주체성을 상실한 채 죽음을 택하는 일은, 존엄한 선택이라기보다 관계와 돌봄의 결핍이 드러난 장면에 가깝다. 통증이 너무 심하니 죽게 해달라는 어느 환자의 말 역시, 통증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돌봄의 공백과 사회적 고립을 함께 증언한다. ‘생산’에 열광하는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비생산적인 생의 끝자락’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런 현실에서 존엄사나 존엄한 죽음을 개인의 선택이나 권리로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원본보기 요양보호사가 한 노인의 집에 방문해 돌봄 활동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오늘날 한국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경로는 단정한 세계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서구 사회와 달리, 이곳에서는 여전히 ‘간병 살인’이 발생한다. 아픔은 쉽게 개인의 자기관리 문제로 환원된다. 일상적인 돌봄의 공백 속에서 크게 아프지 않더라도 노인이 요양 시설로 내몰리는 현실이 반복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태가 나빠지면 결국 상급병원 응급실로 향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여전히 낯선 제도로 남아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생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2018년부터 시행되었지만, 이 법이 과연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언제까지 치료를 이어가야 하는지, 어떤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지, 어떤 보험을 활용할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감당해야 하는지, 누가 간병을 맡을 수 있는지, 생계는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의료진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리고 1인 가구라면 누구와 상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 복잡한 문제를 환자의 자유로운 결정이나 선택권이라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지름길’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죽음을 불평등한 삶의 조건과 연결해 살펴봐야 한다. 죽음을 삶의 총체적 문제로 사유하는 동시에 필요한 사안들을 하나씩 검토해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안락사라는 용어가 존엄사로 표현되며,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곧장 안락사 합법화 주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돌봄’이라는 말은 불편하게 들리는 것일까. 어쩌면 안락사는 더는 살 만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삶을 스스로 끝낼 수 있는 기회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그 선택은 존엄사 혹은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결과 돌봄은 삶을 연장하고 죽어감의 과정에 개입하는 ‘훼방’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안락사 논쟁이 신성한 생명 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으로 흘러가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이 이분법이 우리가 정작 마주해야 할 현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위상적 개념으로서의 인간존엄〉 (손제연, 2018, 법철학연구) 〈노년기, 자기결정권〉 (제철웅 외, 2023, 나남) 〈Technicians of Human Dignity〉 (Gaymon Bennett, 2016, Fordham university press) 송병기 (의료인류학자) editor@sisain.co.kr 어제 글 ↘️ ‘괜찮은 선택지’로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①] 헌법재판소가 ‘안락사’를 둘러싼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좋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보다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징검돌을 놓는 마음으로, 송병기 의료인류학자가 네 차례에 걸쳐 해당 문제의 쟁점을 다룹니다. 죽음과 존엄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외에서는 이 이슈가 www.sisain.co.kr | 2026.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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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주장자❓ 릴레이 | 괜찮은 선택지’로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찬성❓)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①] -송병기님 (의료인류학자)🧑🏻🎤 -- 신선영 박미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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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선택지’로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찬성❓)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①] -송병기님 (의료인류학자)🧑🏻🎤 -- 신선영 박미소 기자님들 시사IN 📰🗞 ㅡ 헌법재판소가 안락사에 관한 헌법소원 심리를 진행 중이다.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의 고통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안락사는 ‘좋은 죽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송병기 (의료인류학자) 헌법재판소가 ‘안락사’를 ▪️▪️▪️ https://naver.me/FnVHQDLY 댓글 사진📷글 포함 링크 터치 ↪️ ‘괜찮은 선택지’로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대화’ ①] 헌법재판소가 ‘안락사’를 둘러싼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좋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보다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징검돌을 놓는 마음으로, 송병기 의료인류학자가 네 차례에 걸쳐 해당 문제의 쟁점을 다룹니다. 죽음과 존엄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외에서는 이 이슈가 naver.me ▪️▪️▪️ 기사 댓글 📝 📷 댓글에 | 2026.0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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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만✨ 바라보는 자기결정권…▪️👨🏻⚕️🩺💉🛌🏻🪔 🆚 🚷🚳🥀연명의료가 줄지 않는 이유 [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이정용 선임기자님 한겨레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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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만✨ 바라보는 자기결정권…▪️👨🏻⚕️🩺💉🛌🏻🪔 🆚 🚷🚳🥀연명의료가 줄지 않는 이유 [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이정용 선임기자님 한겨레 📰 ㅡ 누굴 위한 제도일까요? ⚖️ https://naver.me/5u9MpM3s 📷사진 3장 외 링크 터치 ↪️ 자세한 글 🤔☠🧠 ‘생존’만 바라보는 자기결정권…연명의료가 줄지 않는 이유 [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지난해 마지막 달에 한국은행은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경제적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생애 말 연명의료가 줄지 않아 사회자원의 낭비가 크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65살 이상 노인들의 84.1%가 사전에 연명의료를 naver.me 📷사진 3장 외 링크 터치 ↪️ 자세한 글 🤔☠🧠 📷댓글에 석 장 | 2026.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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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 | [이 🌄아침에] ✨은중과 상연✨ 죽음은 고통이어야 하여야 하나 중 -정명숙 시인님 미주중앙일보 📰🗞 Los Angel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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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 | [이 🌄아침에] ✨은중과 상연✨ 죽음은 고통이어야 하여야 하나 중 -정명숙 시인님 미주중앙일보 📰🗞 Los Angeles ㅡ 신문 사설 | [이 🌄아침에] 죽음은 고통이어야 하여야 하나 -정명숙 시인님 미주중앙일보 📰🗞 Los Angeles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이자 절친이었다. https://naver.me/Fdo66OBW 링크 터치↪️ 사진 등 [이 아침에] 죽음은 고통이어야 하나 | 미주중앙일보 ‘아니다’라는 답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면 생의 마지막(end of life)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문 분야로 통증 완화팀(Palliative Care)은 환자의 통증을 완화... naver.me 📷댓글에 이하 같아요.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보았다. 초등학교 때 만난 이 둘은 경쟁자이자 절친이었다.'선망과 원망'이라는 부제에 맞게 이들의 친구 관계는 우정, 미움, 질투, 동경을 경험하 며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심층 변화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분노와 오해를 남 기고 몇 번의 절교를 맞이하지만 무슨 악연인지 계속 또 만나게 된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40대에 재회한 상연은 은중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의 말기 암 환자여서 안락사를 택해 스위스 로 가기로 했는데 동행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은중은 이 모든 사실을 믿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쇼를 벌이냐 천대하며 밀쳐낸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이야"라고 외친다 결국 은중은 상연의 요청을 수락하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스위스로 간다. 그들은 과거의 오해와 갈등을 되짚어 가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 애쓴 다. 그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둘은 평생 애증 관계로 고통스러워 했음을 서로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은중이 상연에게 꼭 이 선택(안락사)을 했어야만 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묻는다. 상연은 동성연애자였던 오빠의 자살과 말기 암 환자로 괴로워한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연이 찾아간 스위스의 안락사 장소는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실제로 존 재하며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엄격히 말하면 안락사가 아닌 조력자살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 자들을 돕는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구강으로 마시거나 정맥주사의 밸브를 열어 수면 상태로 유도한 다음 혼수상태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디그니타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먼저 이 단체의 회원이 되어야 하며 가입비와 연회비 를 내고 정신적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체력과 이동성이 있어야 한다의사의 진단서와 소견서도 필요하며 간단한 자신의 일대기를 보내고 승인을 기다린다. 일단 서류로 승인되면 스위스에 가서 의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 준비 과정에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 치 않다. 까다로운 과정이고 준비할 서류도 무척 많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큰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 를 선택하는 경우는 자기 죽음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감이 아닐까 📷 The Korean Daily | 2026.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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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존엄사협회 🇰🇷🪔🫂 한존협 | 🇨🇦🇨🇭캐나다와 스위스의 🥀안락사 제도 -koreartd님 한국존엄사협회 🇰🇷🪔🫂 최다혜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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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swany080/224141771591 한국존엄사협회 🇰🇷🪔🫂 한존협 | 🇨🇦🇨🇭캐나다와 스위스의 🥀안락사 제도 -koreartd님 한국존엄사협회 🇰🇷🪔🫂 최다혜 회장님 ㅡ 📨초댓글 가입후 로그인 naver.me/xrctXqKi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안락사? 지난 영상에서 댓글에 어떤 사연을 소개해주신 분▪️▪️▪️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안락사? 지난 영상에서 댓글에 어떤 사연을 소개해주신 분이 계셨는데요, 20대 대학생 청년이 거동 못하는 병든 아버지를 굶겨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병원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선택한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 지난 영상에서 소개드린 🇨🇦캐나다의 글로리아 테일러 역시 안락사가 합법화 되지 않아서 굶어서 죽을 결심을 했었는데요, 굶어 죽는 것이 오랜시간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또 견뎌야 해서 중단을 했을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죽을 결심을 하게되는 것은 안락사의 논의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부분입니다. 바로 남용의 가능성이기 때문인데요, 안락사가 제도적으로 남용이 없이 오로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정착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결정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복지국가인 캐나다와 스위스의 경우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죽음을 결심하는 경우는 배제할 수 있기에 안락사가 가능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즉, 안락사의 이유는 바로, 현대 의학으로는 줄일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 경우, 인도적인 차원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줄여주는 것이지,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결심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이미 다가온 죽음의 문앞에서 존엄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 논의의 핵심이 다시 국가의 역할로 옮겨가는 지점입니다. 국가가 경제적인 이유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 했을때 비로소 내 삶의 마지막 선택을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병원비라는 경제적인 이유를 배제할 때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을 논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는 개인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내리는 판단이지, 경제적인 이유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안락사가 남용의 가능성 없이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뿐만 아니라 꼼꼼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기에 이런점을 염두하고 많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 쇼윈도에서 주연을 맡고 있는 송윤아씨의 남편, 설경구씨가 출연했던 퍼펙트맨이라는 영화 아시나요? 설경구씨는 그 영화에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변호사 였습니다. 주인공은 남을 삶을 2개월정도 남기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자신이 꼭 해보고 싶엇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가면서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하는데요, 그 영화속 장면에서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로 사료되는 문서를 작성하면서 호흡기 부착등 모든 연명장치에 대해 거부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통해 환자의 의사에 따라 아무런 치료 효과없이 임종기에 접어든 말기 환자의 생명만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하거나 유보할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기 위해서는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놓거나, 말기임종기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면 됩니다.또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치된 진술을 하거나 환자의 뜻을 모를 때는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설경구씨가 자신의 마지막 삶을 마무리 하는 방식이 독특하기도 했고, 그 영화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변호사 설경구씨와 조폭 조진웅씨 케미가 너무 잼있어서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우리나가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데요, 캐나다와 스위스의 경우 의사조력사, 즉 자발적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의사조력사가 허용되는 조건이 매우 엄격한데요, 환자는 최소한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심각하고 치유불가능한 질병, 장애를 갖고 있어야 하며, 불가역적 퇴행이 진행된 상태에서 죽음이 합리적으로 예견하능해야 합니다. 특히 의사는 환자가 어떤 외부의 압력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자유롭게 요청한 것인지, 환자가 질병의 예후나 치료가능성과 결과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여야 하고, 그러한 환자의 요청에 대하여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다른 의료진 및 환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상의하여야 하며, 이러한 조건들이 의사조력사에서 요구되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다른 독립된 의사로부터 확인받아야 합니다. 캐나다가 의사조력사를 자국민에 대해서만 허용되는 반면, 스위스의 경우 외국인에게도 의사조력사를 허용하고 있어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스위스의 경우 지난번에도 의사조력사에 대해 말씀 드렸듯이, 의사는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만 내릴뿐, 마지막 순간까지 약물은 환자 스스로 복용하게 됩니다. 이를 가능하기 위해서 실제 의사 두명의 추천에 따라 법원의 허락을 받아서 가능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스위스의 경우에도 의사조력사라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려기간을 거치게 하고 있고, 죽음 외의 다른 대안이 있다는 충분한 상담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가 명확한지에 대해 판단을 거치게 됩니다. 캐나다와 스위스의 공통점은 안락사를 택하기 이전에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 이미 잘 정착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캐나다의 경우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 시스템이 이미 안락사가 합법화되기 이전에 정착이 되어진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안락사를 결심하기 이전에 죽음외에 다른 방도가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상담을 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 이면에는 불필요한 자살을 예방하고, 위험한 자살을 예방하고, 다른 대안들을 제시함으로써 삶을 끝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존엄사 또는 안락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 | 2026.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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