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삶은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서 끝나는 전체과정을 포괄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인격적 자기결정은 어떻게 삶을 마감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도 포함한다"
-한국존엄사협회
“어떤이에게 있어 생명의 신성성이란 단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서 더 나아가 그의 삶이 어떠한가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하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생명의 신성성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
-로널드 드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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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일 행사안내] 세계죽을권리의 날 기념 '존엄사 법률 입법 촉구 걷기대회'
드디어 내일 존엄사 캠페인이 시작됩니다. 참가 신청해주신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직접 참가 못하시는 분들도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일 캠페인을 통해 존엄사 제도화에 한발 더 다가갑시다.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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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정기 온라인 모임] 11월 27일 (목) 오후 3:00 ~ 4:00 (약 1시간) 회원 누구나 참여 가능
안녕하세요. 회원들의 소통과 정보 교환을 위한 11월 정기 온라인 모임입니다. 아래 줌회의 주소를 복사한 후 인터넷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주제: 한국존엄사협회의 Zoom 모임 시간: 2025년 11월 27일 15:00 Zoom 회의 참가 https://us06web.zoom.us/j/86527494762?pwd=uMptv0PYz0Vphvuim1PRuLw57GbOxd.1 회의 ID: 865 2749 4762 암호: 132451 문의사항은 협회로 전화주세요. 031-677-7686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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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신청] 11월 1일 국회 오전 10시 '존엄사법률 입법 촉구 걷기 대회'
일시: 2025년 11월 1일 오전 10시 국회 앞 집결 참가신청: 포스터 내 큐알코드로 참가신청 가능, 문의사항은 한국존엄사협회 사무국 031-677-7686 으로 연락주세요. 202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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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법률 입법촉구 시민 걷기 대회(20251101)
한국 존엄사협회(회장 최다혜)와 순례길학교(교장 조용주)가 주체가 되어 여러 단체와 함께 존엄사 입법촉구 걷기 대회를 진행하였다. 11월 1일은 세계 죽을 권리의 날이다. 이 날은 2008년 파리에서 세계죽을권리연맹에서 처음 지정한 날로 존엄사(조력존엄사) 입법과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국제적 기념일이다. 날씨가 흐리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화창한 날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국회의사당 정원을 돌아보았다. 중앙 조각상 둘레에 심겨진 갖가지 색의 국화들이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로 가보니 관계자들이 벌써 도착하여 명찰과 간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거리를 걸을 때 나누어 줄 전단지도 챙긴 후 국회 의사당이 보이는 문 앞에 서서 오늘의 행사를 시작했다. 걷기 코스는 국회 의사당에서 시작해 대한의사협회, 명동성당, 조계사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순차적으로 방문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먼저 국회의사당 앞에서 순례길학교 조용주 교장이 '조력존엄사 입법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그리고 함께 '국회는 조력존엄사법을 신속히 제정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주먹손을 들어올리며 함께 마음을 모았다. 대오를 정리하고 다음 목적지인 대한의사협회 회관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고 가다가 노들역에서 내렸다.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한강대교를 건너서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회관을 찾아갔다. 회관 앞에서 시위를 하지 못하게 막아서 인도에 대오를 만들었다. 병원에서 연명치료 받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말기 암환자들을 목도하는 사회복지사의 사연을 들으며 존엄한 죽음의 필요성에 대해 여실히 느꼈다. 아파트 숲 사잇길을 걸으며 도시의 가을풍경을 눈에 담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동네 주민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이촌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가다가 명동성당으로 가기 위해 명동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준비한 전단지를 돌리며 조력존엄사법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간도 가졌다. 명동성당 앞에서 다시 대오를 정비했다. 여기서는 말기 암환자였던 어머니를 스위스에 가서 떠나보내고 온 남유하 작가가 사연을 이야기하며 성모송을 암송하였다. 그의 상기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 한 켠에서 뭉클함이 밀려올려왔다. 명동성당에서 걸어서 조계사로 이동하였다. 조계사앞에서는 자애경을 함께 낭독하며 어떠한 생명체일지라도 모두 행복을 누려야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북촌으로 가는 길을 따라 헌법재판소앞까지 갔다. 여기서는 한국 존엄사협회 최다혜 회장이 조력존엄사법이 필요한 것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걷기 코스의 마지막 장소인 기독교총연합회 회관을 가기 위해 창경궁과 종묘 사잇길을 걸었다. 단풍이 들어 알록달록한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을 보며 잠시 앉아 쉬기도 하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관 앞에서 대오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조력존엄사 입법 촉구를 위한 구호를 외쳤다. 두 단체 중심으로 약 3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조력존엄사법이 속히 입법이 되기를 바라며 국회의사당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까지 걸어다니며 존엄하게 죽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알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솔직히 조력존엄사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하기 위해 스위스에 죽으러 간다더라는 얘기도 그냥 흘려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순례길학교 여름 방학 세미나 시간에 최다혜 회장이 발표한 강의를 들으면서 고통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말기 암환자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생각외로 많았고 그 일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력존엄사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찬반의견이 다양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대지만 들어보면 조력존엄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 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 이후 불교아카데미 세미나에 참석하여 존엄사 관련 세미나를 듣고 또 존엄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조력존엄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존엄하게 살다가 존엄하게 죽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생각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간답지 살지 못하고 생명만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순례길학교 https://cafe.naver.com/walkofunification/920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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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빠 TV 유투브 출연] 인간다운 죽음을 찾아서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북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OII1qeRHwvo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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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에릭카 프라이지히 지음 (스위스 라이프서클 대표) 박민경 옮김
스위스 라이프서클 대표이자 의사인 에릭카 프라이지히가 쓴 글이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과정에서 한국존엄사협회가 감수를 했습니다. 감수의 글입니다. 감수의 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권리를 말하다 이 책은 한 스위스 의사의 개인적인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곧 생애 말기 환자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의료인의 시선과 우리가 마주한 법적·윤리적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단지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책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기록이다. 조력사망은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생애 말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게는 구체적이고 절실한 현실이며, 때로는 마지막 남은 인간다운 선택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그 선택이야말로 고통의 시간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생명이란 단지 ‘살아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말기 환자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삶이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나답게 마무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연장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가치인 양, 삶의 마지막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까지 포함한다. 이는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의 핵심이자, 인간 존엄의 본질과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나는 토론회에서 “생애 말기 환자의 마지막 인권”을 이야기했고, “죽을 권리의 날” 행사에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죽음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실현임을 강조해왔다. 또한, 조력사망을 둘러싼 입법 공백과 형법상 자살방조죄의 문제를 지적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동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 그리고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의 환자들은 스위스와 같은 먼 나라로 떠나야만 조력사망이라는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열 시간 넘는 비행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에게 그러한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는 환자의 선택권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단지 법적·제도적 결여가 아닌, 방치되고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도 생애 말기 환자들을 위한 더 많은 선택지를 제도화하고,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단지 몇개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를 단순한 찬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의 실현과 자기결정권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 책이 생애 말기 환자의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담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감수자로서,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염원하는 시민으로서, 이 책의 뜻을 깊이 지지하며 그 길에 함께하겠다. 2025년 7월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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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아카데미 세미나 후기] 지난 9월 13일 불교아카데미에서 조력존엄사를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불교아카데미 세미나 후기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상과 현실-불교인을 중심으로” 지난 9월 13일, 불교아카데미에서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상과 현실-불교인을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불교계에서 처음으로 조력존엄사를 정식으로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불교 교리와 조력존엄사] 가톨릭계가 일관되게 조력존엄사에 반대해온 것과 달리, 불교계는 보다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세미나에서는 조력존엄사가 단순히 생을 끊는 것이 아니라, 말기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해방시키고 편안히 보내주는 자비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는 불교의 교리와 완전히 배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이 사회 변화에 더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표 내용과 다양한 시각] 세미나에서는 현실적·법적 쟁점도 함께 다뤄졌다. 한국존엄사협회는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이 마주하는 구체적 어려움과 제도적 필요성을 제시했고, 조용주 변호사는 법적 측면에서 조력존엄사가 환자의 선택지로 제도화될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불교아카데미 통계 조사에 따르면 불교인의 89%가 조력존엄사 제도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불교계의 인식이 사회적 논의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느낀 점과 기대] 이번 세미나는 조력존엄사 논의에 있어 불교계가 가지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불교의 전통적 교리 속에서 자비와 해탈의 가르침은, 고통에 처한 이들의 마지막 길을 존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불교의 유연한 태도가 한국 사회에 조력존엄사 제도가 성숙하게 정착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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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소식] 11월 1일 세계 죽음의 날 행사를 위한 걷기 대회 사전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다가오는 11월 1일 세계 죽음의 날을 맞아 한국존엄사협회는 순례길 학교와 함께 걷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 대회는 국회에서 출발해 대한의사협회, 명동성당, 조계사, 헌법재판소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존엄사 입법 촉구를 위한 시위를 하는 여정입니다. 따라서 지난 토요일 순례길학교 교장선생님이신 조용주 변호사님과 협회 이사진이 미리 사전답사를 해보았습니다. 사전답사를 하면서도 피켓을 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현재 여러 시민단체와 연합하여 추진본부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11월 1일 걷기에 함께 동참하고자 하시는 회원분들께서는 추후 공지사항을 참고하시어 참여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참여자는 9월부터 모집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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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2024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라는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관련 국내 정책 현황, 국외 현황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조력존엄사 합법화 동의 여부에 대한 여론 조사 통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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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영화 등 🆓쿠플 | [김유태 기자님의 ‘▶️영화와 📚소설 사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 vs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 - 매일경제 📰🗞 (3)
영화 등 🆓쿠플 | [김유태 기자님의 ‘▶️영화와 📚소설 사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 vs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 - 매일경제 📰🗞 ㅡ ​ ​ [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 vs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 ​ ​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삶과 죽음 ​ 📷 ​ ​ ​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 삼은 작품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말기암 환자 친구로부터 “내가 죽을 때, 옆 방에 있어만 달라”는 기이한 요청을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소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서 ‘안락사’를 전면화한 걸작이지요.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일의 윤리성을 되짚으면서 타인의 고통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동참하고 또 연루될 수 있는가를, 아울러 동참과 연루의 자격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였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극도의 고통을 겪더라도 죽음만큼은 선택이 불허되는 오늘날, 난제인 안락사를 첨예하게 다룬 이 작품은 전 세계 소수 영화팬들의 극렬한 지지를 얻었고, 외신에 따르면 이 영화가 2024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첫 상영됐을 때 18분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을 만큼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 https://naver.me/5jB4T0sX 원본 링크 터치 ↪️ [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 vs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삶과 죽음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 삼은 작품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말기 naver.me ​ ​ ​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소설가인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요. 소설 <어떻게 지내요>와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 영화 속 주인공은 작가 잉그리드입니다(소설 속 화자는 익명). 잉그리드는 오랫동안 친밀했지만 지난 몇 년간 연락이 뜸했던 친구 마사가 암에 걸려 맨해튼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잉그리드는 마사의 병실을 찾고, 둘은 반갑게 재회합니다. 뉴욕타임스 종군기자로 일했던 마사는 전장(戰場)의 죽음에 친숙했지만 이제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익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삶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없는 상황입니다. ​ 마사는 고독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괴로워하는 남자친구(아이의 친부)가 떠나자 혼자 힘으로 딸을 양육했고, 그러나 어렵게 키운 딸과의 관계도 악화돼 가족에게 의지할 처지도 못 됩니다. 몸 안의 통증,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마사의 내면을 괴롭힙니다. ​ 마사는 결심합니다. 스스로 이 고통을 끝내버리기로요.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요청합니다. “다크웹을 통해 안락사 💊약을 비밀리에 구했으니 날 도와달라. 곧 삶을 마감할 것이니 날 설득하진 말라. 이 선택은 비가역적이다. 단, 내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나의 🚪‘옆방’에만 있어 달라.”잉그리드는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생각에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 마사의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둘은 에어비앤비에서 마사가 예약한 한적한 숙소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은 마사의 삶의 종착지이기도 했습니다. ​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한 두 사람. 하지만 마사가 과연 어느 순간에 삶을 종결시킬지를 잉그리드는 알 수 없습니다. 마사는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삶을 끝내려 합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바로 지금’이란 판단이 서면 자연스럽게 약을 복용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마사가 아직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던 잉그리드가 잠시 외출했을 때 마사는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소파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 원본보기 ​ 이 작품은 이처럼, 삶이라는 공간과 인접한 죽음에 대해 사유합니다.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란 제목은 ‘옆방’이란 뜻이 될 텐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죽어가는 자와 살아 있는 자의 경계가 분절되지만, 생사의 거리는 상상보다 가까웠음을 상기시킵니다. ​ “잘 지내?”라는 말 대신 ​ 영화의 경우 ‘간접적인 죽음’에 관한 주제가 강화됐지만 소설은 죽음 대신 ‘타인의 고통’을 더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우선 소설의 제목부터 다릅니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이고 소설의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떼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122쪽) 즉, 우리말로는 ‘어떻게 지내요’라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영어로는 “무엇을 ‘겪고’ 있나요”이고,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는 저 의미를 확장한 프랑스어로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를 선택했습니다. 마사는 죽음을 앞둔 인물로 그에게 극단적인 시련을 주는 건 고통 그 자체입니다. 죽음까지 수용할 만큼 이 고통을 끝내겠다는 것이었지요. 시그리드 누네즈가 선택한 영어 제목은 상대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루는 질문이면서, 그 고통을 세심하게 ‘존중’하는 방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잘지내?” 혹은 “너 괜찮아?”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대신, 상대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안부를 묻는 말이 바로 ‘What Are You Going Through’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존재들이지요. 잉그리드가 죽음을 결단한 마사와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공유하고 결국 마사의 곁에 머물며 마사를 떠나보는 것처럼, 인간은 불가해한 고통일지라도 그저 그의 곁에 머물러줌으로써 모든 위안을 다하는 존재임을 소설은 이야기합니다. ​ 질병의 신화 ​ 타인의 고통이란 시선을 유지하면서 영화의 내부로 들어가보면, 소설엔 등장하지 않는 중요한 상징적 장치가 있습니다. 영화에 총 세 번 등장하는, 미국 사상사이자 철학자인 수전 손택의 저서들입니다. 잉그리드가 찾아간 마사의 병실에, 마사가 죽기 위해 찾은 에어비앤비 침실에 수전 손택의 책이 놓여 있습니다. 수전 손택은 소설엔 등장하지 않는 이름인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왜 수전 손택의 책을 영화 곳곳에 숨겨뒀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속 사유의 저변을 이루는 기원이, 너무나 분명하게도 수전 손택의 책에 기반하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에 배치된 수전 손택의 책들은, 영화에 자세하지 않더라도, 수전 손택의 명저 <타인의 고통>과 <은유로서의 질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책은 수전 손택의 사상이 집약된 대표작이며 영화 속 마사의 발언이 수전 손택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수전 손택의 명저 <은유로서의 질병>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 “질병은 하나의 은유가 돼선 안 되며, 질병은 질병일 뿐이다.” ​ 마사가 잉그리드에게 말하는 바도 그러합니다. ​ “사람들이 이 병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영웅 서사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나 봐. 생존자는 영웅이다. 어린아이라면 슈퍼 영웅이고. 그저 할 일을 하는 의사들까지도 영웅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도대체 왜 암이 한 사람의 패기를 판단하는 일종의 시험이 되어야 하는 거지? (중략) 암을 선물이자 정신적 성숙의 기회,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질을 발달시킬 기회로 생각해라. 최고의 자아에 이르는 여정의 한 단계로 생각해라. 진짜라니까. 그런 헛소리를 들으며 죽어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132~133쪽) ​ 수전 손택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질병은 신비로운 이미지로 변질됐습니다. ​ 병은 심리적인 결함이자 운명적인 저주이기에 그에 맞서는 강인함이 환자에게 요구됐다는 설명이었지요. 환자는 질병과 ‘맞서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이고, 이런 은유엔 주로 전쟁에서 사용된 수사가 동원됐습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질병의 패자이고, 싸워서 이기면 승자가 되는 은유의 구조가 인간의 존엄을 더 황폐하게 만들었음을 수전 손택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담론 이면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바라봐야 하는 진실은, 질병은 그저 질병일 뿐이고 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낭만화’를 경계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 또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선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윤리적인 문제인데,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면서 오히려 고통을 마비시킨다고 말이지요. 타자의 고통은 한 개인이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인데, 우리는 ‘본다’라는 명분으로 상대의 고통을 둔감하게 ‘시청’하기까지 합니다. 극중 마사가 잉그리드에게 원하는 바는 바로 위 두 권의 책에서 언급된 바와 동일합니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실패하므로 그저 인간은 타인의 고통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지요.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타인의 삶에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소비해선 안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형성합니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서도 그러했듯이 고통은 들여다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요히 망자의 곁에 머물러주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 [김유태 기자]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 ​ ​ https://naver.me/5jB4T0sX [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 vs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삶과 죽음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원작 삼은 작품입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말기 naver.me ​ ​ ​ ​ 📷쿠플 댓글에 이하 같아요. ​ ​ ​ 감상평 📷 07:12
swany
안락사 반대자 릴레이 | ✝️천주교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유 -안락사법제정님 제공 🧭 | 일반교회는 그러러니 하는데 ⛪성당이 그랬다니 저 🫡스와니가 💥화가 🌋화산처럼 폭팔해요. 그만큼 기대가 컸어요. 돌려 줄 (4)
안락사 반대자 릴레이 | ✝️천주교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유 -안락사법제정님 제공 🧭 | 일반교회는 그러러니 하는데 ⛪성당이 그랬다니 저 🫡스와니가 💥화가 🌋화산처럼 폭팔해요. 그만큼 기대가 컸어요. 돌려 줄 의사가 있다면 방법이 있겠지요... ㅡ https://m.blog.naver.com/swany080/224117941847 ▪️신자가 🥀안락사하면... ▪️일반인 또한 🥀안락사하면...​ ​ 안락사 반대자 릴레이 | ✝️천주교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유 -안락사법제정님 제공 🧭 | 일반교회는 그러러니 하는데 ⛪성당이 그랬다니 저 🫡스와니가 💥화가 🌋화산처럼 폭팔해요. 그만큼 기대가 컸어요. 돌려 줄 의사가 있다면 방법이 있겠지요... ​ https://m.blog.naver.com/weglitter/224116986879 링크 터치 ↪️ 기독교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이유 신자가 안락사하면, 그가 자연사하기 전까지 납부할 수 있었을 기부금 만큼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대합... m.blog.naver.com ​ ​ 📷여러 장 댓글에 ​ ​ 신자가 🥀안락사하면, 그가 자연사하기 전까지 납부할 수 있었을 기부금 만큼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 ​ ​ 일반인 또한 🥀안락사하면, 그가 입교(入敎) 했을 경우 자연사하기 전까지 납부할 수 있었을 기부금 만큼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 ​ ​ ​ ​ ​ ​ ▼ 관련 기사 영상🖼 “치매 노인인데 3억 기부?”…잇따르는 치매 재산 분쟁 대구시 중구에 사는 88세 김 모 씨는 40년 넘게 열심히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지난해 3월... news.kbs.co.kr ​ ​ 원본과 비교 📷 어쨌든 페북통과! 페북 2025.12.22
swany
🥀조력사님 | 미쳐버리겠다. 아픔의 여운으로 😖눈이 감긴다... -조력사님🔱 (헌법소원 이명식씨) (2)
🥀조력사님 | 미쳐버리겠다. 아픔의 여운으로 😖눈이 감긴다... -조력사님🔱 (헌법소원 이명식씨) ㅡ 사람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무엇일까? ​ 아픔이다. 통증이다. 고문이다. ​ 그 중 으뜸은 고문이다. ​ https://m.blog.naver.com/show201401/224116898639 미쳐버리겠다. 아픔의 여운으로 눈이 감긴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픔이다. 통증이다. 고문이다. 그 중 으뜸은 고문이다. 고문은 ... m.blog.naver.com ​ 사람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무엇일까? ​ 아픔이다. 통증이다. 고문이다. ​ 그 중 으뜸은 고문이다. ​ 📷댓글에 ​ ​ 나 또한 그렇다. ​ 통증이 너무 아파 몸이 이기지 못한다. ​ 눈이 감긴다. ​ 아픔때문에 몸이 힘들어 하다보니 그 힘들음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다. ​ 곧 죽을 것만 같다. ​ 자꾸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 어떻게 하지 못해 이렇게 묶여 있는 나, ​ 가면 갈수록 휠체어에서도 침대에서도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아픔만 있다. ​ 죽을 수도 없다. ​ 이렇든 저렇든 버티기는 해야한다. ​ 그런데 너무 아프고 힘들다. ​ 미쳐버리겠다. ​ ​세상에 이렇게 힘든 것이 나에게 생겼다니............... ​ 한없이 눈물만 나온다. ​ 젖꼭지 아래를 잘라버리고 싶다. ​ 통증의 유형도 달라졌다. ​ 처음에는 프레스로 허벅지를 압박하는 통증이었다. ​ 그러다가 어느 때쯤인가 두 다리를 쇠파이프로 두들겨 패는 그런 통증이었다. ​ 그러더니 지금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전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아픔이다. ​ 매일 눈을 뜨는 것이 겁이 난다. ​ 잠을 자는 것도 겁이난다. ​ 눈을 떠 휠체어에 앉는 것도 겁이난다. ​ ​모든게 너무 겁나고 무섭기만 하다. ​ 살아가는 희망이 아니라 죽음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신세라... ​ 누가 이런 것을 가히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 누가 이런 엄청난 통증이 있다고 생각이나 했겟는가. ​ 말기암도 아니고 척수염 환자가 말이다. ​ 아픔, 아픔, 통증, 통증 ​ 아픔이 강해지면 경직도 강해진다. ​ 몸이 아주 굳어버린다. ​ 두 다리의 강직이 너무 심해 발이 안으로 꼬여들면서 발작을 한다. ​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한다. ​ 이제는 진짜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 제발 통증이 몇 %라도 줄어들기를.............................. ​ ​ ​ 🍀☕네이버 카페 관련댓글 📷 #왓츠인마이블로그 #2025블로그챌린지 2025.12.21
swany
페이스북 ☕ 발언 | 🙊 🗣님 경이와 감사를 잃은 인생이라 안락사 합법화운동 중^ 딴지는 아니고 경이를 잃은 존재로서 나름의 대책제안입니다. 혹 안락사, 자살을 긍정.. -정선욱님 🙉📚 (7)
페이스북 ☕ 발언 | 🙊 🗣님 경이와 감사를 잃은 인생이라 안락사 합법화운동 중^ 딴지는 아니고 경이를 잃은 존재로서 나름의 대책제안입니다. 혹 안락사, 자살을 긍정.. -정선욱님 🙉📚 ㅡ 혹 안락사, 자살을 긍정하는 이들을 만나면 불쌍히 여겨주세요...🫡저는 빼고요. ​ 📷댓글에 여러 장! ​ 2025.12.20
swany
🥀조력사님 |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사람들이 모르는 척수 손상 장애인들의 어려움..... -조력사님 🔱(헌법소원 이명식씨) (1)
🥀조력사님 |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사람들이 모르는 척수 손상 장애인들의 어려움..... -조력사님 🔱(헌법소원 이명식씨) ㅡ ▪️"부탁해도 될까"...구더기 덮인 채 죽어간 아내가 남편에 쓴 📨편지 ▪️사고로 장애가 되어 부인이 🪖군인 신분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만 알 뿐, 장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몰랐을 것이다. ▪️활동 보조에 대해 몰랐으니 말이다. 그때 생각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왜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느냐 이말이다. 환자나 가족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 어느 누구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말이다. ​▪️그것은 부인이 💩대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이것은 내가 일년동안 대변이 아무때나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다. ... ▪️그렇듯 국가로서의 의무가 많은데 그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책임을 미룬다는 것은 국가가 만든 참혹함이며 국가가 책잉을 져야하는 것이라고 본다. ​ ​ ​ ​ ​ ​ https://m.blog.naver.com/show201401/224115599156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부탁해도 될까"...구더기 덮인 채 죽어간 아내가 남편에 쓴 편지 온몸에 구더기가 퍼질 정도로 ... m.blog.naver.com ​ ​ ​ 📷요약 / 반복 댓글에 ​ "부탁해도 될까"...구더기 덮인 채 죽어간 아내가 남편에 쓴 편지 ​ ​ ​ 온몸에 구더기가 퍼질 정도로 피부 괴사에 이른 아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육군 부사관 A씨가 중유기치사 혐의가 아닌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 ​ ​ 구급대원은 당시 B씨 상태에 대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신이 대변으로 오염되어 있고 수만 마리 구더기가 전신에 퍼져 있었다”며 “우리가 도착한 상태에서도 대변을 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 ​ 하지 부위에 감염과 욕창으로 인한 피부 괴사가 진행된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한 차례 심정지 증상을 보이다 결국 이튿날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 ​ ​ 온몸에 욕창이 생겼음에도 그가 약 3개월간 병원 치료나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 ​ ​ B씨가 최근까지 A씨에게 쓴 편지와 일기장에는 “나 병원 좀 데려가줘, 부탁 좀 해도 될까”라거나 “죽어야 괜찮을까”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 ​ ​ ​ 위와 같은 기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남편을 질타했다. ​ ​ ​ 맞다, 질타 받아 마땅하다. ​ ​ ​ ​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무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 ​ 무지, 법률의 무지, 지식의 무지,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는 무지.... ​ ​ ​ ​ ​ 부인은 분명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 ​ 아마도 교통사로고 하반신 마비 등이 되어 거동이 힘든 것 같다. ​ ​ ​ ​ ​ 그렇다면 장애인 등록을 하여 활동 보조 신청을 함으로서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 ​ ​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 ​ ​ ​ 과연 알고 있었을까? ​ ​ ​ 분명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 ​ ​ ​ ​ 사고로 장애가 되어 부인이 군인 신분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만 알 뿐, 장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몰랐을 것이다. ​ ​ ​ 그리고 누군가가 장애등록을 하고 활동 보조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지고 않았을 것이다. ​ ​ ​ ​ ​ 남들은 그럴 것이다. ​ ​ ​ 그런것은 스스로 알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 ​ ​ ​ ​ 그러나 어느 정도 알아야 알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알려고 노력을 한단 말인가. ​ ​ ​ 귀동냥이라도 들어야 뭘 할 것이 아닌가. ​ ​ ​ ​ ​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장애가 되었다는 것만 받아들일 뿐,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모른다. ​ ​ ​ 하긴 최소한의ㅣ 의무는 행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그 의무를 따지기 전에 장애에 대한 후속 조치에 대한 것을 어느정도 알아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 ​ ​ ​ ​ 세상은 모르면 어떻게 헤쳐나가지 못하는 법이다. ​ ​ ​ 그리ㅣ고 모르면 그 상태가 자신의 지식 수준이 되는 것이다. ​ ​ ​ ​ ​ 병원에서든 그 어떤 누구든 장애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장애등록 자료를 가지고 장애인 활동보조를 신청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있었을까? ​ ​ ​ 다른 도움을 받을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런 도움마저도 모른 척 했을까? ​ ​ ​ ​ ​ 분명,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 ​ ​ 내가 아니더라도 활동 보조인이 도움을 줄 수 있으니 그 도움을 받으려고 했을것이다. ​ ​ ​ ​ ​ 그러나 그러한 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며 알 수 있는 방법도 몰랐으리라고 본다. ​ ​ ​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 ​ ​ ​ ​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 ​ ​ 내가 장애인이 되어 매일 눈물로 보내면서 병원 생활을 하였었다. ​ ​ ​ ​ ​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삶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앞이 깜깜했다. ​ ​ ​ 그나마 장애등록을 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들어서 알게 되었다. ​ ​ ​ ​ ​ 그러나 활동 보조인 신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 ​ ​ 앞이 깜깜한 상태에서 병원 생활을 하던 중,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은 옆에 있던 장애인들이 말을 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다. ​ ​ ​ ​ ​ 그 귀동냥으로 들은 것을 이용해서 장애등록을 하고, 장애인 차량 이용 신청도 하고, 활동보조도 신청하고, 그러면서 버티는 장애인 생활을 하게되었다. ​ ​ ​ 그런데 만약에 그런 장애인들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병원에만 있다가 퇴원을 하였다면 물론 장애등록은 어떻하든 하겠지만 활동 보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체 지나갔을 것이다. ​ ​ ​ ​ ​ 활동 보조에 대해 몰랐으니 말이다. ​ ​ ​ 그때 생각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 ​ ​ ​ ​ 왜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느냐 이말이다. ​ ​ ​ 환자나 가족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 어느 누구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말이다. ​ ​ ​ ​ ​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하겠는가. ​ ​ ​ 아무것도 모른체 그냥 세월이 흘러갈 뿐이 되는 것이다. ​ ​ ​ ​ ​ 그때에 나는 국가의 의무에 대해 원망을 했다. ​ ​ ​ 이런 것은 의료진이든 누구든 알려주는 것이 의무화가 되어야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와 가족들이 헤쳐나갈텐데 말이다. ​ ​ ​ ​ ​ 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스스로 알아야 하는냐 이말이다. ​ ​ ​ 뭘 안다고....... ​ ​ ​ ​ ​ 장애가 된 것도 서럽고, 슬프기만 한데 누가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 ​ ​ 그게 원망스러웠다. ​ ​ ​ ​ ​ 그렇듯이 지금 남편과 아내는 장애등록과 활동보조 신청을 하여 타인들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을 알았을까? ​ ​ ​ 분명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 뻔하다. ​ ​ ​ ​ ​ 군인이면 사회와 동떨어진 직업이며, 또한 어린 나이에 뭘 제대로 알겠는가.... ​ ​ ​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 ​ ​ ​ ​ 일반인들은 척수 장애인들의 대 소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지금과 같은 기사를 보면 남편이 부인의 몸이 썩어갈때가지 방치를 하였다고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 ​ ​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다. ​ ​ ​ ​ ​ 그러나 나는 대번에 부인이 척수 손상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피부에 괴사가 되었다. 전신이 오물에 오염된 상태다. 우리가 도착한 상태에서도 대변을 보고 있었다. 하지 부위에 감염과 욕창으로 피부 괴사가 진행되었다. 심정지 상태를 보이다 결국 이튼날 패형증으로 사망했다 ​ ​ ​ ​ ​ 이런 증상은 척수 손상 장애인들의 증상이다. ​ ​ ​ 하반신 마비 척수 손상 장애인은 대변이 수시로 나온다. 그래서 대변을 보고 있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 ​ ​ 그것은 부인이 대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 ​ ​ 이것은 내가 일년동안 대변이 아무때나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다. ​ ​ ​ ​ ​ 피부가 괴사가 되었다는 말은 욕창이 심하다는 이야기이다. ​ ​ ​ 척수 손상 장애인들은 욕창이 생기면서 괴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 ​ ​ ​ 척수 장애인 들의 특징이다. ​ ​ ​ ​ ​ 패혈증으로 사망을 했다는 것은 대 소변, 특히 소변의 복압 증상이 패혈증을 만든 것이다. ​ ​ ​ 나 또한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에 패형증에 대해서 잘안다. ​ ​ ​ ​ ​ 그리고 생각해보자. ​ ​ ​ 내가 지금 딸이 간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지, 만약에 요양원에 있었다면 부인이 겪은 그 증상 그대로 사망을 하였을 것이다. ​ ​ ​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욕창이 생겨 피부 괴사가 되었을 것이고, 대변이 나오다 보니 똥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고, 소변이 막혀서 복압이 올라 패형증이 생겨 결국 사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 ​ ​ ​ ​ 이런 증상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동일한 증상들이다. ​ ​ ​ 방실이가 요양병원인가 요양원에서 사망을 하였을 때도 다 이런 패형증으로 사망을 하였을 것이 뻔하다고 본다. ​ ​ ​ ​ ​ 내가 분명 겪었으니 말이다. ​ ​ ​ 급성 패형증으로 중환자실까지 갔었으니 말이다. ​ ​ ​ ​ ​ 이런 이야기를 떠나서 남편과 아내가 장애등록을 하고 활동 보조 신청을 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발생을 하였을까에 대한 한편의 아쉬움이 남는다. ​ ​ ​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의무에 대해 생각해본다. ​ ​ ​ ​ ​ 국가가 이런 것까지를 염두에 두었어야 하며 그래서 처음부터 장애관련 알려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였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 ​ ​ 국가가 의무는 없으면서 비난과 책임만 뭍는 겪이라고 본다. ​ ​ ​ ​ ​ 간병살인으로 아버지를 굶어죽게 만든 아들이 4년형을 받은 것도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 ​ ​ 그 아버지와 아들이 장애등록과 활동 보조에 대해 알았음에도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고 그렇게 죽음을 방치할 수 있었을까? ​ ​ ​ ​ ​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슬픈 일들이다 ​ ​ ​ 국가가 조금이라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의사나 간호사, 병원으로 하여금 알림의 의무를 하게 하였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 ​ ​ ​ ​ 절대 이런 일들은 없었을 것이다. ​ ​ ​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도 본다. ​ ​ ​ ​ ​ 물론, 부인이 병원에 좀 데려가 달라고 하였음에도 데려가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 ​ ​ 그러나 그것을 논하기 이전에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알았다면 활동 보조인의 도움으로 병원을 갔을 것이다. ​ ​ ​ ​ ​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 안에서만 다른 것을 판단하게 된다. ​ ​ ​ 내가 모르면 타인의 어려움을 모르게된다. ​ ​ ​ 그리고 괜한 비난만을 내뱉게 된다. ​ ​ ​ ​ ​ 그래서 국가는 국민에게 많이 알려야 하는 의무를 져야하는 것이다. ​ ​ ​ 국민 스스로가 알아서 기라는 것이 아니라 알게해서 더 나은 국민으로 살게 해야 한다 이말이다. ​ ​ ​ 괜한 국민탓만 하지 말고 말이다. ​ ​ ​ ​ ​ 자, 여기서 또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 ​ ​ ​ 조력사, 존엄사, 안락사 라는 제도가 있었고, 그 제도를 국민들이 알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있을까? ​ ​ ​ ​ ​ 내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아픔이 있어 힘들때, 조력사, 존엄사, 안락사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여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 ​ ​ 그런데 그런 것도 없거니와 그런것이 없다보니 아픔을 겪는 국민들은 선택을 하지 못한 체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 ​ ​ ​ ​ ​ 당사자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있지만 가족이 비참하게 살인이라는 범죄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 ​ ​ 이 얼마나 슬픈일인가 ​ ​ ​ ​ ​ 지금의 상황이 조력사와 관련은 없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해야하는 국가의 의무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 ​ ​ 국가의 의무로서 장애를 입은 부인과 그의 남편인 가족에게 장애 이후에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 하였다면 지금의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고, ​ ​ ​ 또한 간병살인으로 4년을 복역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 ​ ​ ​ ​ 그와 더불어 조력사, 존엄사, 안락사 라는 제도를 만들어 고통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면 당사자 및 가족들 또한 끔직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 ​ ​ 그렇듯 국가로서의 의무가 많은데 그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책임을 미룬다는 것은 국가가 만든 참혹함이며 국가가 책잉을 져야하는 것이라고 본다. ​ ​ ​ ​ ​ 남편에게 책임만 지우려 하지말고 그 이전에 국가의 알려야 하는 의무를 먼저 생각하여야 하는 것이고, ​ ​ ​ 극심한 고통 속에 허우적 대는 사람과 가족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지 말고 그 제도를 만들어 국가의 의무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 ​ ​ ​ ​ ​ ​ ​ ​ ​ ​ ​ ​ 2025.12.20
swany
어느 한 싸이코패스 ✝️기독교인이 내 유튜브에 단 댓글 -스탐TV님 /📚싸이코패스 🔍 (1)
어느 한 싸이코패스 ✝️기독교인이 내 유튜브에 단 댓글 -스탐TV님 /📚싸이코패스 🔍 ㅡ https://m.blog.naver.com/swany080/224114852823 링크 터치 ↪️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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