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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단식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작성자
혜숙 오
작성일
2026-07-25 11:10
조회
264
생활단식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삶의 다이어트입니다
스코트 니어링의 마지막 선택이 남긴 물음
대만의 의사 비류잉이 자신의 어머니 사례를 기록한 논픽션 『단식 존엄사』가 출간되면서, ‘단식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코트 니어링이 삶의 마지막에 곡기를 끊고 생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소개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저는 오혜숙생활단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생활단식은 단지 몸무게를 줄이는 방법이 아닙니다. 평소에 몸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 온 사람은 삶을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무조건 치료에 끌려가기보다, 자신의 뜻과 존엄을 생각하고 가족과 충분히 대화하며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게 됩니다.
물론 임종기의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의 판단과 완화의료, 가족과의 충분한 논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글은 죽음을 서두르거나 단식을 임종의 방법으로 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평소의 생활단식이 삶의 마지막까지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태도를 길러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죽음을 깊이 숙고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남을 축복하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머뭇거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닙니다. 태어남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죽음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단식 존엄사』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삶을 마무리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
현대의료는 수많은 생명을 살려왔고,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임종의 순간까지 반복되는 응급처치와 강제 영양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때로 가족의 죄책감과 의료진의 사명감은 환자가 원치 않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사회는 치료 중심의 마지막을 넘어, 한 인간의 뜻과 존엄을 중심에 두는 죽음의 문화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는 의료를 거부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살릴 수 있는 생명에는 최선을 다하되, 삶의 마지막에는 환자의 뜻과 고통의 경감, 가족과의 작별을 함께 존중하자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사상가 스코트 니어링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는 백 살을 앞둔 노년, 침상에서 조용히 지내며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하듯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잘 잤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익었다고 느낀 어느 날,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아내 헬렌은 남편의 뜻을 억지로 붙들기보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동반자로서 그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1983년 8월의 어느 아침, 헬렌은 남편에게 말합니다.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그냥 두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 했고요.”
스코트 니어링은 천천히 숨을 고르다 마치 마른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조용히 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그 마지막은 죽음을 미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연과 절제 속에서 살아온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바라본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30년 동안 생활단식을 실천하고 개발해 오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오혜숙생활단식은 단순한 다이어트를 위해 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제가 생활단식을 이어온 출발점은 내 몸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단식을 안내하고 많은 사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단식은 몸의 과잉만이 아니라 삶의 과잉까지 돌아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단식은 더 채우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게 합니다. 내 몸의 소리를 듣게 하고,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다시 묻게 합니다. 한 끼를 비우며 몸의 신호를 듣고, 욕심을 덜어내며 마음을 살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게 합니다.
오혜숙생활단식은 살을 빼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삶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깊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잘 살기 위해 삶을 정돈하는 것.
저는 그것이 생활단식이 가르쳐 준 가장 큰 깨달음이며, 오혜숙생활단식이 걸어갈 길이라고 믿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의 마지막 선택이 남긴 물음
대만의 의사 비류잉이 자신의 어머니 사례를 기록한 논픽션 『단식 존엄사』가 출간되면서, ‘단식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코트 니어링이 삶의 마지막에 곡기를 끊고 생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소개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저는 오혜숙생활단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생활단식은 단지 몸무게를 줄이는 방법이 아닙니다. 평소에 몸과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 온 사람은 삶을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무조건 치료에 끌려가기보다, 자신의 뜻과 존엄을 생각하고 가족과 충분히 대화하며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게 됩니다.
물론 임종기의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의 판단과 완화의료, 가족과의 충분한 논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글은 죽음을 서두르거나 단식을 임종의 방법으로 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평소의 생활단식이 삶의 마지막까지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태도를 길러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죽음을 깊이 숙고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남을 축복하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머뭇거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닙니다. 태어남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죽음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단식 존엄사』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삶을 마무리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
현대의료는 수많은 생명을 살려왔고,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임종의 순간까지 반복되는 응급처치와 강제 영양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때로 가족의 죄책감과 의료진의 사명감은 환자가 원치 않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사회는 치료 중심의 마지막을 넘어, 한 인간의 뜻과 존엄을 중심에 두는 죽음의 문화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는 의료를 거부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살릴 수 있는 생명에는 최선을 다하되, 삶의 마지막에는 환자의 뜻과 고통의 경감, 가족과의 작별을 함께 존중하자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사상가 스코트 니어링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는 백 살을 앞둔 노년, 침상에서 조용히 지내며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하듯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잘 잤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익었다고 느낀 어느 날,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아내 헬렌은 남편의 뜻을 억지로 붙들기보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동반자로서 그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1983년 8월의 어느 아침, 헬렌은 남편에게 말합니다.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그냥 두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 했고요.”
스코트 니어링은 천천히 숨을 고르다 마치 마른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조용히 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그 마지막은 죽음을 미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연과 절제 속에서 살아온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바라본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30년 동안 생활단식을 실천하고 개발해 오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오혜숙생활단식은 단순한 다이어트를 위해 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제가 생활단식을 이어온 출발점은 내 몸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단식을 안내하고 많은 사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단식은 몸의 과잉만이 아니라 삶의 과잉까지 돌아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단식은 더 채우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게 합니다. 내 몸의 소리를 듣게 하고,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다시 묻게 합니다. 한 끼를 비우며 몸의 신호를 듣고, 욕심을 덜어내며 마음을 살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게 합니다.
오혜숙생활단식은 살을 빼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삶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깊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잘 살기 위해 삶을 정돈하는 것.
저는 그것이 생활단식이 가르쳐 준 가장 큰 깨달음이며, 오혜숙생활단식이 걸어갈 길이라고 믿습니다.
지리산 죽림정사 대현스님 젊어서 15일간 단식 했을때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기억으로 29일간의 단식으로 열반 하신 유고집입니다
📷오혜x님으로 제 블로그에 게시! 전달도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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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신 분 전국에
거리순했더니 집근처에도 놀래요. 자세한 내용도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