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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사회/교육 정현채교수의 글‘죽음’…품위 있는 🧱마무리가 만드는 삶의 마지막 🎇축제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⑤ 죽음에 대한 이해 -이기봉 기자님 제주매일 🗿📰
작성자
swany
작성일
2026-08-27 09:10
조회
41
뉴스
사회/교육 ‘죽음’…품위 있는 🧱마무리가 만드는 삶의 마지막 🎇축제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⑤ 죽음에 대한 이해 -이기봉 기자님 제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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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https://naver.me/5WU6fE27
‘죽음’…품위 있는 마무리가 만드는 삶의 마지막 축제 - 제주매일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의 일환으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naver.me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의 일환으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편집자 주]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한다.
📷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삶이 어두워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지금 주어진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선 죽음이 점점 우리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맞는 경우가 많아졌다.
생명 살리는 의학 오히려 죽기 힘든 사회 만드는 ‘역설’
📷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지금 주어진 삶에 더욱 충실
안락사‧조력사망 논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질문 중요
의료진에게도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 치료의 실패나 의료의 패배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는 가족의 요청으로 각종 연명치료가 시행되고 환자는 낯선 의료진과 기계장치에 둘러싸인 채 마지막 순간을 맞기도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의학의 발전이 오히려 ‘죽기 힘든 사회’를 만들어낸 역설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래서 건강할 때 유언장을 준비하고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할 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재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다. 그러다 막상 말기질환을 진단받으면 필요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유언이나 연명의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나보고 죽으라는 것이냐”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은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나 역시 몇 년 전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이것은 치료나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마지막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둔다는 뜻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지키는 일이다.
환자에겐 자신의 삶을 정리할 권리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의료현장에선 가족들이 환자에게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충격을 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지막을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만났던 한 췌장암 환자가 그런 경우였다. 가족의 요청으로 자신의 병명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내다가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단순히 ‘남은 수명’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미안했던 사람에게 사과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빼앗아선 안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
최근 우리 사회에선 안락사와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 나누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의 현실, 가족과 의료진의 역할, 사회적 안전장치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안락사와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가 커지는 것도 결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해선 평소부터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봐야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상태까지 치료받기를 원하는지, 마지막 순간에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를 가족과 미리 이야기해 둘 필요가 있다.
죽음에 관한 대화는 죽음을 부르는 대화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대화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리고 안녕
그렇다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조건이 의외로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안녕히”라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평소에 화해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고맙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그 ‘언젠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삶이라는 소풍을 잘 마치는 일
박경리 선생의 통영기념관에서 본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진 세월 가고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서 무엇을 더 가져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평생 쌓아온 집착과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미처 풀지 못한 관계를 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일이다.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이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했던 것처럼 삶을 하나의 소풍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충분히 놀았다면 이제는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날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죽음이 삶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생을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내기 위한 준비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했던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해보자. 그리고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생각해보자.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충실하게 살아낸 삶은 마지막에도 편안한 마무리를 준비하게 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결국 아름다운 삶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오늘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만들어진다.
이기봉 기자news@jejumaeil.net
사회/교육 ‘죽음’…품위 있는 🧱마무리가 만드는 삶의 마지막 🎇축제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⑤ 죽음에 대한 이해 -이기봉 기자님 제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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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https://naver.me/5WU6fE27
‘죽음’…품위 있는 마무리가 만드는 삶의 마지막 축제 - 제주매일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의 일환으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naver.me
‘도민과 함께하는 인문학’의 일환으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편집자 주]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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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이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삶이 어두워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지금 주어진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선 죽음이 점점 우리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맞는 경우가 많아졌다.
생명 살리는 의학 오히려 죽기 힘든 사회 만드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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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생각하고 준비할수록 지금 주어진 삶에 더욱 충실
안락사‧조력사망 논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질문 중요
의료진에게도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 치료의 실패나 의료의 패배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는 가족의 요청으로 각종 연명치료가 시행되고 환자는 낯선 의료진과 기계장치에 둘러싸인 채 마지막 순간을 맞기도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의학의 발전이 오히려 ‘죽기 힘든 사회’를 만들어낸 역설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래서 건강할 때 유언장을 준비하고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할 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재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다. 그러다 막상 말기질환을 진단받으면 필요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유언이나 연명의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나보고 죽으라는 것이냐”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은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나 역시 몇 년 전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이것은 치료나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마지막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둔다는 뜻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지키는 일이다.
환자에겐 자신의 삶을 정리할 권리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의료현장에선 가족들이 환자에게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충격을 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지막을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만났던 한 췌장암 환자가 그런 경우였다. 가족의 요청으로 자신의 병명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내다가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단순히 ‘남은 수명’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미안했던 사람에게 사과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빼앗아선 안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
최근 우리 사회에선 안락사와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 나누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의 현실, 가족과 의료진의 역할, 사회적 안전장치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안락사와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가 커지는 것도 결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해선 평소부터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봐야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상태까지 치료받기를 원하는지, 마지막 순간에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를 가족과 미리 이야기해 둘 필요가 있다.
죽음에 관한 대화는 죽음을 부르는 대화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대화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리고 안녕
그렇다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조건이 의외로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안녕히”라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평소에 화해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고맙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그 ‘언젠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삶이라는 소풍을 잘 마치는 일
박경리 선생의 통영기념관에서 본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진 세월 가고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서 무엇을 더 가져갈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평생 쌓아온 집착과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미처 풀지 못한 관계를 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일이다.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이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했던 것처럼 삶을 하나의 소풍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충분히 놀았다면 이제는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날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죽음이 삶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생을 살아낸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내기 위한 준비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했던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해보자. 그리고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생각해보자.
보람 있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듯 충실하게 살아낸 삶은 마지막에도 편안한 마무리를 준비하게 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결국 아름다운 삶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오늘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만들어진다.
이기봉 기자news@jejumaeil.net
📷정현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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